미스도도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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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도한 여자라고? 그런지도 모른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집적대는 남자들
보기 좋게 퇴짜도 많이 놨었고,
어기적거리다가 들어간 경기도의 모 대학에서도
어중이 떠중이들의 대쉬를 민망하게 거절도 많이 했으니까.
나름 욕심이 있어서 뒤늦게 한 공부로
서울의 모 대학에 편입을 했다.
여기서도 나는 도도한 여자로 알려졌다.
그냥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일 뿐인데
외모상 차가운 이미지가 많이 작용을 한 것 같다.
이곳에서의 1년.
생각해보면 20대 초의 3년이 이래저래 늘 혼자였다.
편입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가
막상 편입을 하고 나서는 적응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다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자존감 자신감은 늘 나를 지지해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정말 의지할 사람 한명만 제대로 만나면
쓸쓸한 세상도 다 보상받을 것이라 믿고 지내왔다.
그런데 딱 이 사람이다 싶은 남자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고 그런 놈팽이들이야 너무 뻔해서 패스!
그렇다고 내가 외모처럼 도도하고 고상한 것만은 아니다.
웬만한 남자들 못지않은 성지식을 온라인을 통해서 섭렵도 했다.
성욕은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그는 나와 같은 과 동기였다.
나이는 2살 어렸지만, 동생처럼 느껴지지 않는
우수 짙은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아웃사이더는 아웃사이더를 알아본다.

지독하게 외로운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만큼 외로울지도 모른다.
나는 지독한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매력 없는 착한 사람과 매력 없는 착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전혀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어쩐지 끌리는 남자였다.
사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억지로 인연을 만들고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끌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진짜 중요한 일이었다.
비록 인연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라는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유혹이라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떨림을 그대로 안고 곁에서 기다리는 것이었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짐짓 태연한 척 가장하지 않았다.
초조한 안색으로 그를 지나쳤고, 이따금 그를 탓하듯 눈을 마주쳐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럴 때조차도 그의 눈길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선생님에게 혼나는 어린아이의 표정으로 금새 돌아온다.
나는 있는 그대로가 좋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1년간의 마주침만으로도 후회나 원망이 있을 수 없다.
미스도도인 내가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하는 남자를
찾아낸 것만으로도 행운이라면 행운.
그런데 그는 내 표정을 남김없이 읽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저렇게
흔들림이 없을까?
아니 흔들림이 없다기 보다는 자기 내면 만으로도
고독하고 힘든 사람이다.

그의 눈빛에 잠깐씩 스쳐가는 탐욕을 관찰하는 것은
떨리는 경험이다.
그러나 그는 그 욕망에 머물지 않고 다시 자신 안으로 침잠한다.
나는 지금껏 혼자 익혀 온 성지식들 중 그 어떤 것이라도
그와는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쾌락에 몸부림치며 나를 다뤄주었으면.......
확실한 것은 쾌락이란 전염성이 짙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설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 외에 다른 남자들에게는
나라면 솔직히
쾌감이 전달되어 오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는 타이밍에 맞는 적절한 경우라면 쾌락을
끝까지 추구할 남자라는 것을
그래서 더욱 기대감이 상승되고 자꾸 그런 상황을 그려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도 내 시원한 이목구비와 탐스런 몸매를 정확히 알아보고 있다.
탐미적인 취향이 깊다는 것이 나와 공통분모인 것을
지난 일 년의 말없는 마주침을 통해 관찰해왔다.
학교 뒤쪽으로 뻗은 오솔길에 있는 한적한 벤치는
그가 저녁시간을 홀로 보내곤 하는 장소였다.
아무런 말도 나눈 바 없건만 왠지 서로 눈빛만으로
꽉 차게 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가던 어느 봄날 저녁에
나는 그의 벤치에 조용히 다가가 바로 옆 벤치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는 나를 알아봤다.
그리고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노을이 지는 하늘 가로 얼굴을 돌린다.
선이 고우면서도 굳은 옆모습이다.
나는 왠지 스스로 사냥꾼 앞에 무방비상태로 나선
먹이감이 된 듯한 느낌에 심장이 콩닥거렸다.
일부러 야한 차림을 한 것도 아니고
교태스러운 눈빛을 건낸 것도 아닌데
기분 좋은 부끄러움과 더불어 노을빛에 얼굴이 취한다.

그저 저녁에 잠시 이렇게 옆 벤치에 함께 앉아있는 것이 좋다.
봄 한동안 저녁의 동석이 이어졌다.
설렘과 묘한 기대감은 늘 뒤섞여 찾아왔다.
고상하지 않다고 저급한 것은 아니다.
이따금 기대감에 밑이 달아오를 때조차 나는
그 순간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으니까.......

5월
그는 내게 먼저 접근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다가선다.
“저기요.......”
“.......”
“이 시간에 자주 여기 앉아있으시네요.”
“네.......편입하신 분이죠?”
“네.......자주 얼굴은 봤는데 오늘에야 처음으로 얘기를 해보네요.”

서로 말을 많이 나누지는 안아도
함께 나란히 같은 곳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어스름 즈음이 늘 만족스럽다.
물론 어서 그가 그의 자취방으로 나를 초대해주길
기다리는 마음도 자주 든다.
나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다 되어있었다.
그도 그것을 느낌으로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일부러 나를 애태우는 것은 아니다.
뜸을 들이고 있는 거겠지.

이제 날씨는 제법 무더워졌다.
기말고사가 끝날 즈음 그가 집으로 내려가버리면
나는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다.
종강을 앞둔 어느날 저녁.
“준호씨....... 우리 다른 곳에서도 데이트좀 해요.”
“.......어디가 가고싶은데요?”
“남들처럼 교외로 놀러도 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고......
나 준호씨 자취방에도 한번 가본적이 없는데.......“
“.......그러면 우리 내일 오전 시험 끝나고 남산에 갈까요?”
“네! 좋아요.”

심수봉 노래였던가.......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그 신파조의 노래가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타워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
등산로를 따라 걸어 내려오던 중에 조금 지쳐 보이는 나를 의식하고
말없이 벤치에 먼저 걸터앉는 그의 옆모습과 눈빛.......
한동안을 함께 앉아있었다.
곁눈질로 수줍게 그를 바라보던 나를
갑자기 바라보는 그의 눈빛
내 흔들리는 눈을 알아차린 것이 분명하다.
내 모습이 예쁘게 보였던 것인지
조용히 머리를 스다듬는다.

“아...잠깐만요.......”
몸이 배배 꼬인다.
움츠리는 내게 그가 말한다.
“미나야....... 가만히 있어.”
미나씨가 아니라 미나야.......
처음으로 그가 나의 이름을 미나야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어조에
나는 복종할 수밖에 없다.

뒤통수에 얼마나 많은 신경세포가 몰려있는 걸까?
녹아드는 듯하다.
내 표정이 그에게 자신감과 성욕을 불러 일으키고 있겠지.......
그는 찬찬히 나의 옆모습 그리고 떨리는 표정을 하나하나 덤덤하게 즐기고는
다시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한다.
“이제 일어나요.”
먼저 걸음을 옮기는 그이.
나는 마치 애무를 당한 듯한 착각속에서
그의 발걸음을 따른다.

내친 걸음에 남대문과 명동까지 돌아다니고 저녁을 먹은 후에
헤어질 때 그가 말한다.
“방학 때 나 안내려가요. 자주 봐요.”
“네.......”
그는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나 있는 듯
내가 가장 궁금해 하던 말을 해준다.

기말고사가 모두 끝난 날.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저녁때가 되어
다시 그 벤치에 앉았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도 더 말이 없는 그.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내 머리를 움켜잡고
자기 쪽으로 돌린다.
그의 눈빛은 내 작은 움직임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차라리 눈을 감았다.
입술을 가르는 그의 입술과 혀.
이건 뽀뽀도 키스도 아니다.
입을 사용한 성교다.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부드럽지만 마음대로
살짝 빨아당기는가 하면
혀로 입술 안쪽과 잇몸 그리고 혀를
자연스럽게 쓸고다닌다.
내 입술이 성기가 된 기분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몇분일까? 한시간? 두시간?
팬티는 이미 젖었다.
귓바퀴를 혀로 간지를 때에는 정말이지
울음 비슷한 신음이 터질 뻔 했다.
녹아내리는 감촉과 서걱이는 소리가 뒤엉켜
클리토리스를 무방비로 맡긴 것 같은 느낌이 온 몸으로 펴졌다.
볽그레한 내 얼굴을 잠시 찬찬히 감상하던 그이가 말한다.
“미나야. 자취방으로 가자.”
“.......네.......”

15분 거리의 자취방까지 어떻게 걸었는지도 생각이 안난다.
단지 내 얼굴로 표정으로 남아있는
붉은 여운을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알아보는 것 같은 떨림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든든하게 내 옆에서 걷고 있는
그의 존재만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드디어 자취방에 도착.
내가 들어서자 문을 꼼꼼히 문단속을 한 그는
벽에 기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떨구고 서 있는 내 앞에
숨결이 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서는
내 양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는 지긋이 어깨를 누른다.
무릎을 꿇으면서 스쳐가는 그의 가슴과 복부
그리고 하복부...
성기가 이미 바지 속에 발기되어 있다는 것을
그 잠시 스치는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확인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 둘 곳이 없는 내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
나는 마치 묘한 덫에 걸린 상태로 꼼짝을 할 수 없다.
차라리 나에게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말해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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