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왕이 되자 - 2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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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비, 새로운 조짐
유나가 떠나는 것을 지켜본 성태가 말했다.
“분명히 나를 카타나 여자와 만나게 만들거야. 나를 죽이고 싶을 테니까. 장소는 짐작할 수 없지만 시기는 두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겠군. 증오심을 불태우는 지금 냉정을 잃고 스킬을 사용한다면 내일 카타나 여자를 만날거야. 유나의 마음에서 읽은 미래관조라는 스킬은, 스킬을 시행한 다음날이 인물들을 장소로 이동시키게 되어있거든.
만약 냉정을 되찾는다면 일주일 뒤가 될거다. 유나의 마음 속에서 일주일 뒤에 나를 만나는 장면을 봤어. 그럼 그 전에 카타나 여자를 만나봤자 내가 살아남는다는 거지. 그 과정이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살아남는다는 불리한 상황을 냉정을 찾은 뒤에 만들리는 없다. 결국 내일까지 여기 있어봐야겠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놀지 뭐.”
다음 날 카타나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일행은 일주일 뒤 카타나 여자와 싸우게 될 거라는 쪽으로 판단을 했고, 모든 노예에게 알렸다. 노예들은 예린처럼 대부분 학교에서, 몇몇은 각자의 장소에서 스킬을 수행했다. 오로지 주인의 승리를 위해서.
예린은 성태가 조종하는 상대들과 싸워가며 카드 사용과 몸놀림을 익혔다. 무수한 패배를 경험했지만 드디어 한번의 승리를 경험했다. 처음으로 승리하던 날, 성태는 섹스말고 다른 포상을 내렸다. 조언이었다.
“시간을 돌린다. 이건 어마어마한 능력이야. 솔찍히 말해서 내 능력보다 말도 안되지.”
“어… 주인의 능력이 더 대단하지 않아?”
“그건 그냥 그렇게 활용한 내가 대단한거고.”
뻔뻔한 그 말에 예린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성태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인간의 마음을 조종하는 건 어떻게 해서든 가능한 일이야. 세뇌에 가까운 프로파간다를 계속 해대던가 대화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던가. 정도의 차이는 있고 내 능력이 악마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카테고리가 불가능인 항목은 아니라는 거야. 시간을 되돌리는 건 다르지. 명백히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내 말 이해했어?”
“그러니까 이런거야?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 예, 예, 예를들어 네가 나를 조, 조, 조, 좋아하길 바란다면 세뇌를 통해 마음을 바꿀 수도 있지만, 나의 매력을 어, 어, 어필하거나 해서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거지? 시간을 돌리는 건 어떤 식으로도 불가능하고?”
“조조조좋아하길이라는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맞아.”
“따라하지마!”
자신의 얼굴 표정까지 흉내내는 성태를 보며 예린이 소리질렀다. 성태는 그런 예린을 보며 다시 한번 조, 조, 조, 좋아하길… 어, 어, 어필하거나… 라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예린의 얼굴이 잘 익고 말았다.
“아무튼 그런거다. 너를 괜히 행동 대장 비슷하게 쓰려는게 아냐. 네 능력은 무궁무진해.”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그렇긴 하네…”
놀림받다가 칭찬을 받으니 마음이 복잡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예린은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살짝 쓸었다.
“문제는 네가 고지식한 멍청이라는 데 있지. 불가능하다는 인식은 이 게임에서 굉장한 패널티야. 시간을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진리가 네 마음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네가 처음에 돌릴 수 있었던 시간은 5초. 지금은 몇초?”
“...30초.”
“생각해볼까? 네 능력이 올랐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감을 수 있게 되었지. 단순 배율로 따지면 6배로군. 냉정히 생각해봐. 네가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게임을 시작한 직후보다 6배만큼 더 강해졌어?”
잠깐의 고민 끝에 예린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성장이 그렇게까지 폭발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왜 5초의 6배인 30초인걸까? 네가 시간을 되감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야.”
“어?”
“실제로 시간을 감았잖아? 무의식 속에서 시간은 감을 수 있는 것이라는 명제가 깔린거지.”
“아… 그렇구나.”
“덕분에 더 적은 양의 욕망으로 많은 시간을 감게 되었지. 최대로 감을 수 있는 폭도 30초로 늘어난거고.”
예린은 한숨을 쉬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짐작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진지하게 스킬과 게임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 생각을 고쳐먹는 것 만으로도 강해지는 것이 가능하겠네. 오늘부터 생각을 달리하는 습관을 가져볼까?”
“당연히 해야지. 기본기 중의 기본기다. 참고로 나는 이런 판단을 내린 뒤 하루도 빠지지않고 나는 뭐든지 가능하다고 자기 최면을 걸고 있어. 하지만 무의식 속에서 16년간 뿌리 내린 상식을 뒤엎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느려. 당장 효과를 볼 방법은 아냐.”
“음…”
“그러니 고민해. 여러가지 조건을 걸고 구체화 해서 스킬을 생성해. 꼭 스킬을 생성할 필요는 없지만, 아직 너는 스킬을 생성하는게 이득일거야. 게임 참가자니까 스킬로 초월적인 힘을 낼 수 있다… 이런 명제가 네 마음 속 깊숙히 박혀있거든. 구체적으로 이러이러한 조건 하에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런식으로 여러가지 조건을 걸면 그냥 시간을 되돌리는 것 보다 네가 납득하기 쉬워지고, 따라서 소모되는 욕망이 작아지면서 효과는 증폭되는거야. 여러가지 생각을 계속해. 꼭 시간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어. 시간을 되감는 건 네 최대의 장점이지만, 장점 외의 것을 활용할 상황은 반듯이 생기니까.”
고개를 끄덕이던 예린은 순간 번뜩이는 생각에 성태를 바라보았다. 엄청난 걸 생각해냈어! 자신의 생각에 도취되었다. 성태에게 자신이 무엇을 생각해냈는지 말하려는 데… 예린의 마음을 읽은 성태가 먼저 말했다.
“해봤어.”
“어?”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파괴한 뒤에, 노예로 만들고... 내가 정한 상식을 무의식 속에 새기는 작업. 해봤어 이미. 스킬을 사용할 만큼 성장도 시켜봤고.”
“아… 벌써…”
조금 시무룩해지긴 했지만 결과가 궁금했다. 예린은 약간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이며 성태의 대답을 기다렸다. 성태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하품을 했다.
“게임이 너무 재미없어질 것 같았어. 말도 안되는 초인이 탄생하던데. 재미난 방식이 생각 나지 않으면 그건 사용하지 않는 걸로.”
예린은 성태의 충만한 자신감에 질려하며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기 시작했다.
***
예린은 하교 후 봄과 함께 자신의 집으로 왔다. 봄의 등장에 예린의 엄마, 나영선은 익숙하게 그녀를 맞이했다.
“안녕, 봄아.”
“안녕하세요.”
영선의 인사에 봄이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식사는?”
“먹고왔어.”
“얘는 집에서 먹지않고.”
봄이가 오늘 와서 자고갈거라는 예린의 전화에 힘을 주어 식사를 준비했는데, 영선은 조금 김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식사 준비는 모두 고용인들이 한 것이지만.
“우리는 바로 방에 가서 공부할거야.”
다소 쌀쌀맞은 말이었지만 영선은 예린의 말에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의 죽음 이후로 집에서는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딸이었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감정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영선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며칠 전에는 후배라면서 봄이를 집에 데리고 오기까지 했다. 언젠가는 남자 친구도 데려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되는 영선이었다.
예린은 그런 영선의 웃음을 보며 고개를 떨구고 우물쭈물 거리더니 봄이의 손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 봄이는 그 손길에 별다른 저항없이 익숙한 태도로 끌려가며 영선에게 눈빛과 고개짓으로 인사한다. 영선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방으로 들어간 예린은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조금은 어두워진 그녀의 표정을 보며 봄이 예린의 뒤에서 어깨를 끌어당기며 몸을 밀착시켰다. 따듯함에 예린은 편안히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가족들은… 특히 엄마는 불편해.”
“아빠 일은 선배 탓이 아닌 걸 알잖아요.”
“머리로는 알고있어.”
하지만 마음은? 마음이란건 왜 이렇게 이성적이지 않은걸까? 주인은 자신의 마음이 집에 올때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걸 알면서 왜 그대로 두는걸까? 예린의 표정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예전처럼 격렬함은 없었지만, 많이 나아졌지만, 마음 속의 통증은 여전히 있다.
“고마워.”
봄이의 체온을 느끼며 예린이 말했다. 봄이는 몸을 떨어트리며 싱긋 웃었다. 예린도 가볍게 한숨을 쉬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못난 꼴을 매일같이 보이고 있어 부끄러우면서도 마음을 누군가에게 솔찍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느꼈다. 성태만큼은 아니라도 봄이는 정보화된 노예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
두 사람이 교복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예린은 자신의 책상 의자에 봄은 예린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별다른 말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최근 두사람이 연습하는 것은 서로의 연계였다. 봄이가 손에 쥔 테니스 공을 던졌다. 단순히 주고받기위해 가볍게 던지는 것이 아닌 전속력의 투구였다. 예린의 손에 들린 카드 한장이 날아가 테니스 공에 맞자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느린 공을 예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받았다. 예린은 손에 쥔 공을 불만스럽게 바라보았다.
“다섯번이네요.”
봄이 말하자 예린은 조금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번만에 맞춘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다섯번 시간을 되감은 결과였다. 한번 실패할 때마다 봄은 예린의 머리에 들어있는 미래에 공이 움직일 궤적을 예린의 시야로 전송했다. 다가올 경로를 알고 있는 예린이 카드를 던져 명중 시킨다. 처음에는 여러모로 시행착오가 많은 시도였다. 봄이 전송한 정보가 너무 선명해 시야를 가리기도 했고, 궤적이 잘 못되어 표시되기도 했다. 그리고 물체의 이동 경로를 알고 있다고는 해도 빠른 경로로 움직이는 무언가를 맞춘다는 것 자체가 쉬운 시도가 아니었다. 계속되는 노력 끝에 이 정도의 횟수로 조정된 것이다. 게다가 욕망을 크게 낭비 하지 않으며 적절한 시간을 감는 것을 조정하는 것도 섬세한 작업이었다.
“다섯번까지는 제법 잘 줄여졌는데 여기서부터는 잘 안되네. 동체시력이라던가 육체적으로 직접 움직이는 훈련도 병행해야하는 게 아닐까?”
“지금 하는 것도 충분히 육체적인 훈련도 되는 거 같은데요.”
“그래, 그렇지… 으, 자꾸 초조해지는 거 같아. 다른 학생들은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예린 선배도 충분히 빠른 성장을 하고 있는데요. 저는 다른 사람의 성장 데이터를 실제로 머리속에 가지고 있으니까요.”
예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초조해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면서 시야에 어떤 정보가 보이면 더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새롭게 표시되는 정보를 보기 쉽게 수정하는 작업을 거쳤다. 연습은 계속 되었다. 한시간 정도의 연습을 했을 때 예린이 말했다.
“엄마가 30초 뒤에 올거야.”
“응, 선배의 기억을 봤어요.”
타이트하게 연습을 진행하고 있는데 엄마가 간식을 들고 방문을 연 것이다. 예린은 놀라지도 않고 단숨에 시간을 감았다. 곧 엄마가 정확한 시간에 과일을 담은 접시를 들고 방문을 열었다.
“과일 좀 먹고 하렴.”
미리 준비하고 교과서와 참고서를 편 탁자에 앉아있던 두 소녀가 과일 접시를 받고 감사를 표하자 영선이 방을 떠났다.
“마침 좋을 때네요. 이제 휴식 좀 취할까요?”
“좀 더 할 수 있지않을까?”
“저번에 욕망을 몽땅 쏟아부어서 한참 동안 아무것도 못했던거 기억하시죠?”
“윽.”
“휴식도 중요해요.”
봄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며 사과를 베어물었다. 예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입 사과를 먹는다. 봄과 연습을 시작하며 생긴 또 하나의 장점은 그녀가 적절한 브레이크가 되어준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와는 달리 집에서는 욕망이 회복되는 정도가 훨씬 느렸다. 아마도 학교가 점령지이기 때문인 모양이지. 예린은 사과를 우물거리며 아예 학교에서 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배는 어른이 되면 분명히 일 중독자가 될 거에요.”
봄이 예린의 생각을 읽고 말했다. 예린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봄이가 점점 주인처럼 남의 속을 막 읽고있어.
“주인님과는 다르게 노예들의 생각밖에 못 읽지만요. 게다가 표면에 들어난 생각만 읽을 수 있고.”
어느새 빈 접시를 보며 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일 접시를 들고 나가려는데 봄이 그녀의 옷깃을 잡았다.
“조금만 더 쉬어요. 응?”
침대에 눕는 봄을 보며 예린은 얼굴을 붉히며 접시를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봄의 골반을 깔고 앉으며 상체를 숙였다. 혀로 봄의 귀를 살짝 핥는다.
“으응…”
봄이 나직히 신음을 흘리며 예린의 티셔츠 속에 손을 넣었다. 손은 더 안쪽을 탐하며 브레지어 속으로 파고들더니 예린의 가슴을 만지작 거린다. 예린이 기분 좋은 듯 몸을 꿈틀거리며 봄의 목에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요?”
예린은 딱히 대답없이 봄의 상의를 잡아당겼고, 봄은 두 팔을 올려 그녀가 벗기기 쉽도록 도왔다. 순조롭게 상의가 벗겨지고 하얀 피부와 브레지어가 드러났다. 예린의 입술이 봄의 목을 지나 쇄골에 몇번 맞춰졌다.
“주인님도 우리 이런 기억들을 보며 꽤 재밌어하시던거.”
예린은 얼굴을 붉히며 상체를 다시 일으켰다. 티셔츠를 벗으며 말했다.
“그래서, 주인님을 기쁘게 하려고 이러는 거라고?”
“후훗, 그건 아니죠. 순전히 내가 기분 좋기 위해서.”
예린이 다시 상체를 숙이며 봄과 키스했다. 혀와 혀가 얽히고 가슴이 서로 부벼졌다. 그러는 동안 두사람의 손이 서로 자신의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옷을 벗으며 몸과 몸이 비틀렸고 자극적인 마찰이 두사람을 감샀다. 조금 땀이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예린은 봄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에요. 예린 선배 냄새 좋아요.”
봄이 예린의 머리칼을 조금 자신의 코에 가져가 맡으며 말했다. 예린은 별다른 말 없이 하반신을 봄의 몸과 맞추었다. 천천히 허리를 돌리자 음부와 음부가 비벼지며 까슬한 느낌이 감각을 자극했다. 애액이 섞이는 미묘한 느낌에 천천히 몸을 맡겼다. 주인과 할 때 처럼 격렬함은 없었지만 부드럽게 차오르는 쾌감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예린은 손을 봄이의 보지에 가져가 몇번 더듬다가 중지를 균열 속에 밀어넣었다. 매끄럽게 빨려들어간 손가락은 다정하게 운동을 시작한다. 봄이는 자신의 입에서 점점 거친 숨소리가 나오자 예린의 어깨에 입을 가져다댔다. 방 너머에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곧 절정을 맞이한 봄이 몸을 살짝 떨었다. 예린은 자신을 강하게 끌어안으며 어깨에 얼굴을 바짝 비벼대는 봄을 즐겼다.
“엄청 야해.”
예린은 얼굴을 봄이의 얼굴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 봄이는 약간 심통이난 표정으로 대꾸했다.
“선배도 곧 야한 표정을 짓게 될걸요.”
봄이의 선언과 함께 이번에는 예린의 보지 속으로 봄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움찔 움찔 허리를 떨며 그녀의 손가락을 받았다. 예린의 허리가 저도 모르게 들어올려졌다. 봄은 한손으로 쉼 없이 예린의 질을 공략하며 한손으로는 점점 올라가는 허리를 부드럽게 눌렀다. 곧 예린의 허리가 봄이의 몸에 밀착되었고, 봄은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예린의 떨림을 즐겼다. 종착역에 도달한 예린이 무언가 소리를 내뱉으려 할 때 봄의 입술이 예린의 입을 막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뜨거운 숨결이 한동안 이어지다 천천히 가라앉았다.
“엄청 야해요.”
입술을 때며 봄이 말하자 예린은 얼굴을 붉혔다.
“점점 짓궂어지는 거 같아.”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말을 마친 두사람은 다시 한번 키스를 나누었다.
“예린아, 할아버지 오셨어!”
영선의 목소리에 예린은 바로 시간을 되감았다. 30초를 몽땅 감은 덕에 예린은 피곤을 느꼈다. 봄이 그녀에게 말했다.
“선배도 곧 야한 표정을 짓게 될걸요.”
“안돼, 할아버지가 올거야.”
두 소녀는 얼른 옷을 다시 입고 탁자로 내려와 서로 마주보며 앉았다. 봄은 뾰루퉁한 표정으로 예린을 흘겨보았다.
“선배는 나보고 맘대로 생각을 읽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훨씬 치사한 거 알아요?”
“어쩔 수 없잖아.”
“오늘 엄청 괴롭혀줘야지.”
예린은 봄이가 나중에 반드시 그렇게 할 거라는 생각을 하며 몸을 가볍게 떨었다. 곧 영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린아, 할아버지 오셨어!”
예린의 얼굴이 조금 굳었고, 봄이는 예린의 표면에 떠오른 생각을 읽었다.
“할아버지 싫어해요?”
“응.”
숨길 필요도 없고, 감정을 숨길 자신도 없었기에 예린은 솔직히 시인했다. 봄이 조용히 예린의 손을 잡아주었다. 예린은 가볍게 미소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봄도 그 뒤를 따랐다.
“손님이 있었군.”
“후배에요.”
할아버지인 이현욱의 말에 예린이 조금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봄은 고개 숙여 인사하자 현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럽게 코트를 벗어 다가온 가정부에게 건내자 그녀가 옷을 받아 사라졌다.
“시장하군.”
그말을 끝으로 현욱은 식당으로 향했다. 식탁에는 곧 식사가 차려졌다. 봄이를 대접할 요량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기에 식탁은 풍성하게 차려졌다. 저녁은 모두들 먹었지만 의사 따위는 묻지 않고 가족과 봄이 전원의 상이 함께 차려졌다.
예린과 봄은 조금 긴장했다. 왕래가 잦지 않았기 때문에 게임을 시작한 후 현욱을 보는 것은 예린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일반인이 보기에 말도 안되는 초능력을 지니게 된 두사람은 현욱이 풍기는 압박감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고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의 느낌이었다.
현욱이 말없이 먼저 숟가락을 들자 식사가 시작되었다. 영선도 봄과 예린도 그리 편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현욱이 수저를 놓자 식사가 끝났다. 어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시간이었다. 찰나 같기도 했고 영원 같기도 한…
“성태.”
현욱이 짧막하게 말했다. 예린과 봄은 그 짧은 단어에 몸을 떨었다. 주인이 왜?
“나 좀 보자고 해라. 그렇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예린의 머리 속으로 수만가지 생각이 휘몰아쳤다. 주인은 왜 찾는거지? 뭘 알고있나? 할아버지도 게임 참가자야? 느껴지는 압박감은 그런 생각에 설득력을 높였다.
“대답이 없군.”
“...네.”
예린은 별다른 생각을 떠올려도 소용없다고 느끼며 위축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영선은 뭐가 뭔지 몰라 시아버지와 예린의 눈치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현욱은 별다른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걸치고 집을 떠났다. 배웅을 위해 일어났던 일행이 엉거주춤 서있는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모두가 자리에 도로 앉았다.
“성태라니… 마왕 그룹 성태 말하는 거 맞니?”
영선의 말에 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거… 같은데.”
“무슨 일 있어? 아는 거 있니?”
예린은 더 복잡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중얼거리 듯 대답했다.
“나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
작가의 말
짬내기가 쉽지 않네요 ㅜㅜ
글쓰기가 재밌어서 회사에서는 폰으로 짬짬히 다른 것도 써보고 있습니다.
악마왕을 계속 쓰려고 했는데 컴에서 쓰던걸 폰으로 쓰려니 어색하더라구요.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아예 다른 단편 같은걸 써보며 퇴근하고는 악마왕을 쓰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계속 바쁠테니 늦더라도 양해바랍니다 -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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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떠나는 것을 지켜본 성태가 말했다.
“분명히 나를 카타나 여자와 만나게 만들거야. 나를 죽이고 싶을 테니까. 장소는 짐작할 수 없지만 시기는 두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겠군. 증오심을 불태우는 지금 냉정을 잃고 스킬을 사용한다면 내일 카타나 여자를 만날거야. 유나의 마음에서 읽은 미래관조라는 스킬은, 스킬을 시행한 다음날이 인물들을 장소로 이동시키게 되어있거든.
만약 냉정을 되찾는다면 일주일 뒤가 될거다. 유나의 마음 속에서 일주일 뒤에 나를 만나는 장면을 봤어. 그럼 그 전에 카타나 여자를 만나봤자 내가 살아남는다는 거지. 그 과정이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살아남는다는 불리한 상황을 냉정을 찾은 뒤에 만들리는 없다. 결국 내일까지 여기 있어봐야겠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놀지 뭐.”
다음 날 카타나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일행은 일주일 뒤 카타나 여자와 싸우게 될 거라는 쪽으로 판단을 했고, 모든 노예에게 알렸다. 노예들은 예린처럼 대부분 학교에서, 몇몇은 각자의 장소에서 스킬을 수행했다. 오로지 주인의 승리를 위해서.
예린은 성태가 조종하는 상대들과 싸워가며 카드 사용과 몸놀림을 익혔다. 무수한 패배를 경험했지만 드디어 한번의 승리를 경험했다. 처음으로 승리하던 날, 성태는 섹스말고 다른 포상을 내렸다. 조언이었다.
“시간을 돌린다. 이건 어마어마한 능력이야. 솔찍히 말해서 내 능력보다 말도 안되지.”
“어… 주인의 능력이 더 대단하지 않아?”
“그건 그냥 그렇게 활용한 내가 대단한거고.”
뻔뻔한 그 말에 예린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성태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인간의 마음을 조종하는 건 어떻게 해서든 가능한 일이야. 세뇌에 가까운 프로파간다를 계속 해대던가 대화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던가. 정도의 차이는 있고 내 능력이 악마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카테고리가 불가능인 항목은 아니라는 거야. 시간을 되돌리는 건 다르지. 명백히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내 말 이해했어?”
“그러니까 이런거야?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 예, 예, 예를들어 네가 나를 조, 조, 조, 좋아하길 바란다면 세뇌를 통해 마음을 바꿀 수도 있지만, 나의 매력을 어, 어, 어필하거나 해서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거지? 시간을 돌리는 건 어떤 식으로도 불가능하고?”
“조조조좋아하길이라는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맞아.”
“따라하지마!”
자신의 얼굴 표정까지 흉내내는 성태를 보며 예린이 소리질렀다. 성태는 그런 예린을 보며 다시 한번 조, 조, 조, 좋아하길… 어, 어, 어필하거나… 라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예린의 얼굴이 잘 익고 말았다.
“아무튼 그런거다. 너를 괜히 행동 대장 비슷하게 쓰려는게 아냐. 네 능력은 무궁무진해.”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그렇긴 하네…”
놀림받다가 칭찬을 받으니 마음이 복잡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예린은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살짝 쓸었다.
“문제는 네가 고지식한 멍청이라는 데 있지. 불가능하다는 인식은 이 게임에서 굉장한 패널티야. 시간을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진리가 네 마음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네가 처음에 돌릴 수 있었던 시간은 5초. 지금은 몇초?”
“...30초.”
“생각해볼까? 네 능력이 올랐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감을 수 있게 되었지. 단순 배율로 따지면 6배로군. 냉정히 생각해봐. 네가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게임을 시작한 직후보다 6배만큼 더 강해졌어?”
잠깐의 고민 끝에 예린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성장이 그렇게까지 폭발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왜 5초의 6배인 30초인걸까? 네가 시간을 되감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야.”
“어?”
“실제로 시간을 감았잖아? 무의식 속에서 시간은 감을 수 있는 것이라는 명제가 깔린거지.”
“아… 그렇구나.”
“덕분에 더 적은 양의 욕망으로 많은 시간을 감게 되었지. 최대로 감을 수 있는 폭도 30초로 늘어난거고.”
예린은 한숨을 쉬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짐작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진지하게 스킬과 게임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 생각을 고쳐먹는 것 만으로도 강해지는 것이 가능하겠네. 오늘부터 생각을 달리하는 습관을 가져볼까?”
“당연히 해야지. 기본기 중의 기본기다. 참고로 나는 이런 판단을 내린 뒤 하루도 빠지지않고 나는 뭐든지 가능하다고 자기 최면을 걸고 있어. 하지만 무의식 속에서 16년간 뿌리 내린 상식을 뒤엎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느려. 당장 효과를 볼 방법은 아냐.”
“음…”
“그러니 고민해. 여러가지 조건을 걸고 구체화 해서 스킬을 생성해. 꼭 스킬을 생성할 필요는 없지만, 아직 너는 스킬을 생성하는게 이득일거야. 게임 참가자니까 스킬로 초월적인 힘을 낼 수 있다… 이런 명제가 네 마음 속 깊숙히 박혀있거든. 구체적으로 이러이러한 조건 하에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런식으로 여러가지 조건을 걸면 그냥 시간을 되돌리는 것 보다 네가 납득하기 쉬워지고, 따라서 소모되는 욕망이 작아지면서 효과는 증폭되는거야. 여러가지 생각을 계속해. 꼭 시간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어. 시간을 되감는 건 네 최대의 장점이지만, 장점 외의 것을 활용할 상황은 반듯이 생기니까.”
고개를 끄덕이던 예린은 순간 번뜩이는 생각에 성태를 바라보았다. 엄청난 걸 생각해냈어! 자신의 생각에 도취되었다. 성태에게 자신이 무엇을 생각해냈는지 말하려는 데… 예린의 마음을 읽은 성태가 먼저 말했다.
“해봤어.”
“어?”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파괴한 뒤에, 노예로 만들고... 내가 정한 상식을 무의식 속에 새기는 작업. 해봤어 이미. 스킬을 사용할 만큼 성장도 시켜봤고.”
“아… 벌써…”
조금 시무룩해지긴 했지만 결과가 궁금했다. 예린은 약간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이며 성태의 대답을 기다렸다. 성태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하품을 했다.
“게임이 너무 재미없어질 것 같았어. 말도 안되는 초인이 탄생하던데. 재미난 방식이 생각 나지 않으면 그건 사용하지 않는 걸로.”
예린은 성태의 충만한 자신감에 질려하며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기 시작했다.
***
예린은 하교 후 봄과 함께 자신의 집으로 왔다. 봄의 등장에 예린의 엄마, 나영선은 익숙하게 그녀를 맞이했다.
“안녕, 봄아.”
“안녕하세요.”
영선의 인사에 봄이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식사는?”
“먹고왔어.”
“얘는 집에서 먹지않고.”
봄이가 오늘 와서 자고갈거라는 예린의 전화에 힘을 주어 식사를 준비했는데, 영선은 조금 김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식사 준비는 모두 고용인들이 한 것이지만.
“우리는 바로 방에 가서 공부할거야.”
다소 쌀쌀맞은 말이었지만 영선은 예린의 말에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의 죽음 이후로 집에서는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딸이었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감정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영선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며칠 전에는 후배라면서 봄이를 집에 데리고 오기까지 했다. 언젠가는 남자 친구도 데려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되는 영선이었다.
예린은 그런 영선의 웃음을 보며 고개를 떨구고 우물쭈물 거리더니 봄이의 손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 봄이는 그 손길에 별다른 저항없이 익숙한 태도로 끌려가며 영선에게 눈빛과 고개짓으로 인사한다. 영선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방으로 들어간 예린은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조금은 어두워진 그녀의 표정을 보며 봄이 예린의 뒤에서 어깨를 끌어당기며 몸을 밀착시켰다. 따듯함에 예린은 편안히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가족들은… 특히 엄마는 불편해.”
“아빠 일은 선배 탓이 아닌 걸 알잖아요.”
“머리로는 알고있어.”
하지만 마음은? 마음이란건 왜 이렇게 이성적이지 않은걸까? 주인은 자신의 마음이 집에 올때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걸 알면서 왜 그대로 두는걸까? 예린의 표정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예전처럼 격렬함은 없었지만, 많이 나아졌지만, 마음 속의 통증은 여전히 있다.
“고마워.”
봄이의 체온을 느끼며 예린이 말했다. 봄이는 몸을 떨어트리며 싱긋 웃었다. 예린도 가볍게 한숨을 쉬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못난 꼴을 매일같이 보이고 있어 부끄러우면서도 마음을 누군가에게 솔찍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느꼈다. 성태만큼은 아니라도 봄이는 정보화된 노예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
두 사람이 교복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예린은 자신의 책상 의자에 봄은 예린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별다른 말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최근 두사람이 연습하는 것은 서로의 연계였다. 봄이가 손에 쥔 테니스 공을 던졌다. 단순히 주고받기위해 가볍게 던지는 것이 아닌 전속력의 투구였다. 예린의 손에 들린 카드 한장이 날아가 테니스 공에 맞자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느린 공을 예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받았다. 예린은 손에 쥔 공을 불만스럽게 바라보았다.
“다섯번이네요.”
봄이 말하자 예린은 조금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번만에 맞춘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다섯번 시간을 되감은 결과였다. 한번 실패할 때마다 봄은 예린의 머리에 들어있는 미래에 공이 움직일 궤적을 예린의 시야로 전송했다. 다가올 경로를 알고 있는 예린이 카드를 던져 명중 시킨다. 처음에는 여러모로 시행착오가 많은 시도였다. 봄이 전송한 정보가 너무 선명해 시야를 가리기도 했고, 궤적이 잘 못되어 표시되기도 했다. 그리고 물체의 이동 경로를 알고 있다고는 해도 빠른 경로로 움직이는 무언가를 맞춘다는 것 자체가 쉬운 시도가 아니었다. 계속되는 노력 끝에 이 정도의 횟수로 조정된 것이다. 게다가 욕망을 크게 낭비 하지 않으며 적절한 시간을 감는 것을 조정하는 것도 섬세한 작업이었다.
“다섯번까지는 제법 잘 줄여졌는데 여기서부터는 잘 안되네. 동체시력이라던가 육체적으로 직접 움직이는 훈련도 병행해야하는 게 아닐까?”
“지금 하는 것도 충분히 육체적인 훈련도 되는 거 같은데요.”
“그래, 그렇지… 으, 자꾸 초조해지는 거 같아. 다른 학생들은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예린 선배도 충분히 빠른 성장을 하고 있는데요. 저는 다른 사람의 성장 데이터를 실제로 머리속에 가지고 있으니까요.”
예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초조해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면서 시야에 어떤 정보가 보이면 더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새롭게 표시되는 정보를 보기 쉽게 수정하는 작업을 거쳤다. 연습은 계속 되었다. 한시간 정도의 연습을 했을 때 예린이 말했다.
“엄마가 30초 뒤에 올거야.”
“응, 선배의 기억을 봤어요.”
타이트하게 연습을 진행하고 있는데 엄마가 간식을 들고 방문을 연 것이다. 예린은 놀라지도 않고 단숨에 시간을 감았다. 곧 엄마가 정확한 시간에 과일을 담은 접시를 들고 방문을 열었다.
“과일 좀 먹고 하렴.”
미리 준비하고 교과서와 참고서를 편 탁자에 앉아있던 두 소녀가 과일 접시를 받고 감사를 표하자 영선이 방을 떠났다.
“마침 좋을 때네요. 이제 휴식 좀 취할까요?”
“좀 더 할 수 있지않을까?”
“저번에 욕망을 몽땅 쏟아부어서 한참 동안 아무것도 못했던거 기억하시죠?”
“윽.”
“휴식도 중요해요.”
봄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며 사과를 베어물었다. 예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입 사과를 먹는다. 봄과 연습을 시작하며 생긴 또 하나의 장점은 그녀가 적절한 브레이크가 되어준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와는 달리 집에서는 욕망이 회복되는 정도가 훨씬 느렸다. 아마도 학교가 점령지이기 때문인 모양이지. 예린은 사과를 우물거리며 아예 학교에서 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배는 어른이 되면 분명히 일 중독자가 될 거에요.”
봄이 예린의 생각을 읽고 말했다. 예린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봄이가 점점 주인처럼 남의 속을 막 읽고있어.
“주인님과는 다르게 노예들의 생각밖에 못 읽지만요. 게다가 표면에 들어난 생각만 읽을 수 있고.”
어느새 빈 접시를 보며 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일 접시를 들고 나가려는데 봄이 그녀의 옷깃을 잡았다.
“조금만 더 쉬어요. 응?”
침대에 눕는 봄을 보며 예린은 얼굴을 붉히며 접시를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봄의 골반을 깔고 앉으며 상체를 숙였다. 혀로 봄의 귀를 살짝 핥는다.
“으응…”
봄이 나직히 신음을 흘리며 예린의 티셔츠 속에 손을 넣었다. 손은 더 안쪽을 탐하며 브레지어 속으로 파고들더니 예린의 가슴을 만지작 거린다. 예린이 기분 좋은 듯 몸을 꿈틀거리며 봄의 목에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요?”
예린은 딱히 대답없이 봄의 상의를 잡아당겼고, 봄은 두 팔을 올려 그녀가 벗기기 쉽도록 도왔다. 순조롭게 상의가 벗겨지고 하얀 피부와 브레지어가 드러났다. 예린의 입술이 봄의 목을 지나 쇄골에 몇번 맞춰졌다.
“주인님도 우리 이런 기억들을 보며 꽤 재밌어하시던거.”
예린은 얼굴을 붉히며 상체를 다시 일으켰다. 티셔츠를 벗으며 말했다.
“그래서, 주인님을 기쁘게 하려고 이러는 거라고?”
“후훗, 그건 아니죠. 순전히 내가 기분 좋기 위해서.”
예린이 다시 상체를 숙이며 봄과 키스했다. 혀와 혀가 얽히고 가슴이 서로 부벼졌다. 그러는 동안 두사람의 손이 서로 자신의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옷을 벗으며 몸과 몸이 비틀렸고 자극적인 마찰이 두사람을 감샀다. 조금 땀이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예린은 봄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에요. 예린 선배 냄새 좋아요.”
봄이 예린의 머리칼을 조금 자신의 코에 가져가 맡으며 말했다. 예린은 별다른 말 없이 하반신을 봄의 몸과 맞추었다. 천천히 허리를 돌리자 음부와 음부가 비벼지며 까슬한 느낌이 감각을 자극했다. 애액이 섞이는 미묘한 느낌에 천천히 몸을 맡겼다. 주인과 할 때 처럼 격렬함은 없었지만 부드럽게 차오르는 쾌감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예린은 손을 봄이의 보지에 가져가 몇번 더듬다가 중지를 균열 속에 밀어넣었다. 매끄럽게 빨려들어간 손가락은 다정하게 운동을 시작한다. 봄이는 자신의 입에서 점점 거친 숨소리가 나오자 예린의 어깨에 입을 가져다댔다. 방 너머에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곧 절정을 맞이한 봄이 몸을 살짝 떨었다. 예린은 자신을 강하게 끌어안으며 어깨에 얼굴을 바짝 비벼대는 봄을 즐겼다.
“엄청 야해.”
예린은 얼굴을 봄이의 얼굴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 봄이는 약간 심통이난 표정으로 대꾸했다.
“선배도 곧 야한 표정을 짓게 될걸요.”
봄이의 선언과 함께 이번에는 예린의 보지 속으로 봄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움찔 움찔 허리를 떨며 그녀의 손가락을 받았다. 예린의 허리가 저도 모르게 들어올려졌다. 봄은 한손으로 쉼 없이 예린의 질을 공략하며 한손으로는 점점 올라가는 허리를 부드럽게 눌렀다. 곧 예린의 허리가 봄이의 몸에 밀착되었고, 봄은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예린의 떨림을 즐겼다. 종착역에 도달한 예린이 무언가 소리를 내뱉으려 할 때 봄의 입술이 예린의 입을 막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뜨거운 숨결이 한동안 이어지다 천천히 가라앉았다.
“엄청 야해요.”
입술을 때며 봄이 말하자 예린은 얼굴을 붉혔다.
“점점 짓궂어지는 거 같아.”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말을 마친 두사람은 다시 한번 키스를 나누었다.
“예린아, 할아버지 오셨어!”
영선의 목소리에 예린은 바로 시간을 되감았다. 30초를 몽땅 감은 덕에 예린은 피곤을 느꼈다. 봄이 그녀에게 말했다.
“선배도 곧 야한 표정을 짓게 될걸요.”
“안돼, 할아버지가 올거야.”
두 소녀는 얼른 옷을 다시 입고 탁자로 내려와 서로 마주보며 앉았다. 봄은 뾰루퉁한 표정으로 예린을 흘겨보았다.
“선배는 나보고 맘대로 생각을 읽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훨씬 치사한 거 알아요?”
“어쩔 수 없잖아.”
“오늘 엄청 괴롭혀줘야지.”
예린은 봄이가 나중에 반드시 그렇게 할 거라는 생각을 하며 몸을 가볍게 떨었다. 곧 영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린아, 할아버지 오셨어!”
예린의 얼굴이 조금 굳었고, 봄이는 예린의 표면에 떠오른 생각을 읽었다.
“할아버지 싫어해요?”
“응.”
숨길 필요도 없고, 감정을 숨길 자신도 없었기에 예린은 솔직히 시인했다. 봄이 조용히 예린의 손을 잡아주었다. 예린은 가볍게 미소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봄도 그 뒤를 따랐다.
“손님이 있었군.”
“후배에요.”
할아버지인 이현욱의 말에 예린이 조금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봄은 고개 숙여 인사하자 현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럽게 코트를 벗어 다가온 가정부에게 건내자 그녀가 옷을 받아 사라졌다.
“시장하군.”
그말을 끝으로 현욱은 식당으로 향했다. 식탁에는 곧 식사가 차려졌다. 봄이를 대접할 요량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기에 식탁은 풍성하게 차려졌다. 저녁은 모두들 먹었지만 의사 따위는 묻지 않고 가족과 봄이 전원의 상이 함께 차려졌다.
예린과 봄은 조금 긴장했다. 왕래가 잦지 않았기 때문에 게임을 시작한 후 현욱을 보는 것은 예린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일반인이 보기에 말도 안되는 초능력을 지니게 된 두사람은 현욱이 풍기는 압박감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고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의 느낌이었다.
현욱이 말없이 먼저 숟가락을 들자 식사가 시작되었다. 영선도 봄과 예린도 그리 편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현욱이 수저를 놓자 식사가 끝났다. 어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시간이었다. 찰나 같기도 했고 영원 같기도 한…
“성태.”
현욱이 짧막하게 말했다. 예린과 봄은 그 짧은 단어에 몸을 떨었다. 주인이 왜?
“나 좀 보자고 해라. 그렇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예린의 머리 속으로 수만가지 생각이 휘몰아쳤다. 주인은 왜 찾는거지? 뭘 알고있나? 할아버지도 게임 참가자야? 느껴지는 압박감은 그런 생각에 설득력을 높였다.
“대답이 없군.”
“...네.”
예린은 별다른 생각을 떠올려도 소용없다고 느끼며 위축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영선은 뭐가 뭔지 몰라 시아버지와 예린의 눈치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현욱은 별다른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걸치고 집을 떠났다. 배웅을 위해 일어났던 일행이 엉거주춤 서있는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모두가 자리에 도로 앉았다.
“성태라니… 마왕 그룹 성태 말하는 거 맞니?”
영선의 말에 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거… 같은데.”
“무슨 일 있어? 아는 거 있니?”
예린은 더 복잡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중얼거리 듯 대답했다.
“나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
작가의 말
짬내기가 쉽지 않네요 ㅜㅜ
글쓰기가 재밌어서 회사에서는 폰으로 짬짬히 다른 것도 써보고 있습니다.
악마왕을 계속 쓰려고 했는데 컴에서 쓰던걸 폰으로 쓰려니 어색하더라구요.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아예 다른 단편 같은걸 써보며 퇴근하고는 악마왕을 쓰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계속 바쁠테니 늦더라도 양해바랍니다 -_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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