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惡魔)의 유혹 - 1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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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惡魔)의 유혹>- 11부.


마녀(魔女) 탄생(誕生).


1

설민은 저녁 아르바이트 채비를 하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설란을 보다가 얼떨떨해졌다.
뭐가 그리 좋은일이 있는지 잔뜩 상기된 얼굴로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래 설란아? 무슨 일 있어?]
그녀는 설민이의 물음에 고개를 들며 겨우 미소지으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있었다.
[뭐야. 뭐 좋은 일 있어?]
[후우...후우... 오빠...]
[엉 그래 말해.]
[나... 나... 제일 처음으로 병원... 결정됐어.]
[뭐라고?!]
[히히..]
설민은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정말...정말... 잘됐다... 너무... 잘 됐어...]
폴짝거리는 설란을 보면서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졌다.
[또 또... 이 기쁜날 오빠 또 울려고 한다.]
[아냐... 그냥...눈이 좀 아파서...하하...]
웃으며 서로를 보듬어 보는 둘은 남매사이다.
일찍 조실부모(早失父母) 한 뒤 맡겨진 친척집에서 온갖 구박과 학대를 같이 견디다 못해 상경(上京)한 이후 어린
여동생을 위해 설민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몰랐다.
새벽부터 오밤중까지 불과 몇시간의 잠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그녀가 잘되기만을 학수고대한 그였다.
그간의 고생을 늘어놓으라면 소설 한권을 쓰고도 모자라겠지만 그에게 오늘 그녀의 소식은 그동안의 고생을 말끔
히 지워주는 축복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렸을때부터 꿈이었던 간호대학을 들어간 설란이 졸업과 동시에 바로 취업할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것은 그만큼
그녀도 열심히 공부한 덕분이겠지만 그녀의 노력은 설민에 비한다면 발가락의 때에도 비교가 안 된다는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오빠... 이제 조금만 참아. 나 월급 받기 시작하면 일도 줄이고... 나때문에... 하지 못한 공부도 하게 해줄께...오빠
...... 나때문에... 그동안 너무...고생했어...]
그녀의 눈도 붉어졌다. 참으려 해도 눈치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나보고 울지 말라면서 넌 왜 울어... 눈 퉁퉁 부어. 울지마...]
[오빠만 생각하면... 나... 정말 마음이 아파... 이런 바보같은 오빠가 있는 사람은 나뿐일꺼야... 그러면서...가장
훌륭한 오빠를 가진 사람도... 나뿐일꺼야... 오빠... 고마워...]
그녀를 안으며 설민도 눈물을 훔쳤다. 이 불쌍한 남매에게도 하늘은 조그마한 기회를 주시기 시작했구나 하는 생
각에 그는 헛되지 않은 그간의 고생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내 걱정말고 너만 열심히 하면 돼.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열심히 해서 나중에 이쁘게 시집만 잘 간다면 난 그걸
로 족해.]
[누가 시집이라도 간대? 오빠 결혼하는 꼴 보기전에는 어림없어.]
눈물을 닦으며 농담을 던지는 설란이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야야... 내 결혼할때까지 너 잔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얼른 너 시집 보낼란다.]
[뭐야! 쳇...호호호.]
[하하하하하...]
그날은 그들에게 평생 처음 행복이라는 달콤함에 젖게 한 첫번째 날이었다. 그런 그들의 창밖으로 땅거미가 길게
드려지고 있었다.
##

엉거주춤한 그러면서 쭈뼛거리며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설란의 옆에 서서 사진을 찍히는 설민은 잔뜩 긴장한
얼굴을 풀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가족들끼리 사진을 찍느라 누구하나 그를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지만 평생 처음 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그에게는 모든것이 낯설었다.
[오빠. 자... 이거 쓰고...]
그녀가 쓰고 있던 학사모를 벗어 그에게 씌워준다. 얼떨결에 씌워진 학사모에 벌게진 얼굴을 한 그의 모습은 정말
우스꽝스러웠다.
[자~ 한장만 더 부탁해~]
동기생중 많지 않은 남자친구들이라고 소개받은 사내중 하나가 벌써 여러장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어색하게 사진기 앞에 노출되어 있는 설민의 모습에도 설란의 입가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졸업생중 대표로 우등상을 받은것도 모자라 서울에서 몇손가락 안에 든다는 크고 유명한 성형외과병동에 취직하
게 된 그녀의 능력을 졸업식장와서도 새삼스럽게 느낄수 있었다.
[이렇게 우등상을 받게 된 영광을 저에게 도움을 주신 대학관계자 여러분과 학우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저희 오빠에게 돌리면서 긴 소감을 마칠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설을 하던 설란의 눈에도 물기가 맺혔고 강당 한쪽 구석에서 초라하게 앉아 그녀의 연설을 듣던 그의 얼굴에도
만감이 교차하는 눈물이 하염없이 내렸었다.
[다음주부터 나 출근이야 오빠. 거기 월급도 엄청 쎄다. 부지런히 모으면 금세 우리 집도 살수 있을꺼야. 히히]
[집이 뭐 껌값이니 금방 사게?]
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품고 있는 꿈을 그녀라면 반드시 해낼것 같은 기분을 받았다.
[놀다와. 이걸로 맛난것두 좀 사먹구... 난 다시 일하러 가볼께.]
그녀의 손에 적지않은 만원권을 쥐어주며 설민은 걸음을 옮겼다.
[오빠... 난 돈 있어... 그리구...같이 밥이라도 먹구 가...]
[니가 무슨 돈이 있어... 그걸루 오랜만에 맛난거 사먹구 들어와. 친구들 기다리잖아. 얼른... 재미나게 놀아.]
그가 준 돈을 쥔 채 멀어지는 설민을 바라보는 설란의 주위로 바람하나가 지나갔다.
##

[기집애야. 뒤풀이는 당연히 나이트지 그럼. 잔말 말고 오늘은 도망 못가.]
친구들의 손목에 이끌려 나이트클럽 입구로 질질 끌려들어가던 설란은 계속 뿌리치려 애썼지만 그녀들은 작정을
했는지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안 갈테니...다른데 가자. 응? 내가 쏠께. 응?]
[이 지지배가... 4년이다 4년. 맨날 내뺀게... 소개팅 한번만 하자해도 그리 열녀문 세웠으면 됐잖냐. 오늘은 우리
하자는대로 하자. 자~ 렛츠 고우~]
##

[그냥...우리..끼리 놀자...]
조금전 친구들의 귀에 한참을 속삭이고 간 남자가 잠시 후 돌아와 좌석을 합치자고 한것 같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일어나는 그녀들에게 설란은 불안한지 말을 건냈지만 이미 그녀들은 그녀의 말조차 들리
지 않는 모양이었다.
혼자서라도 나갈까 싶었지만 오늘 이후부터 얼마나 자주 보게 될지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친구들
의 뒤를 따랐지만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홀을 지나 룸이 시작되는 곳으로 이동하자 조금전의 그 사내가 어느 룸의 문을 열고 그녀들에게 손짓했다.
실내에 대여섯명의 사내들이 들어서는 그녀들을 훑고 있었다.
중앙에 앉아 있던 사내를 제외하고는 그리 많은 나이로 보이지 않는듯 했지마 그는 중년의 느낌을 풍기고 있었고
특히나 날카로운 눈과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신경쓰였다.
[사장님. 오늘 본 아가씨들 중에 제일 괜찮은 분들입니다.]
설란을 안내했던 그가 자리 중앙에 앉아있던 날카로운 사내에게 대뜸 인사를 했다. 그녀들에게는 낯선 풍경이었
지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설란 혼자 뿐인것 같았다. 친구들은 틈새에 앉으며 인사하기에 바빴다.
이런 상황에 익숙치 않은 그녀가 멀찍이 서 있자 사내 한명이 살짝 눈치를 주며 안으로 그녀를 밀어댔다.
얼떨결에 중앙으로 앉게 되자 예의 그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술잔을 내밀었다.
[학생인가?]
낮은 목소리조차 잘 갈린 흉기처럼 폐부를 찌르는 느낌처럼 들려왔다.
[오늘...졸업이라서...]
[아... 그럼 아가씨들도 축하의 자리구만... 나도 오늘 진급해서 말이지... 사장이 되버렸어. 허허허]
[오므나... 사장님이시구나... 그럼 물주시겠네요?]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며 그를 치켜세웠다. 같이 강의를 들을때는 상상도 못할 모습들이 그녀들에게서 나오고 있어
설란은 의아할 뿐이었다.
[뭐 그렇게 되나? 그럼 물주 노릇 할테니 시키고 싶은거 마음껏 시켜봐요. 아가씨들.]
손뼉을 치며 좋아라하는 그녀들을 보던 사내가 그녀들과는 달리 잠자코 앉아 있는 설란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리 이쁜 아가씨는 기분이 별로이신가?]
흠짓하는 설란이 들고 있던 술잔을 살며시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런데...처음이라서요...]
[오... 그랬구만... 그럼 우리 인사나 하면서 조금씩 친해져 볼까?]
그가 자신의 술잔을 들며 건배를 청해 어쩔수 없이 다시 술잔을 든 그녀가 건배와 함께 잔을 입에 대었다.
쓰디쓴 양주가 식도를 타고 흘렀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그녀의 표정이 마음에 드는지 그가 씨익 웃어보았다.
[나 차명환이라고 하는 사람이야. 아가씨는?]
[설란이에요... 유... 설란요...]
##

넙죽 넙죽 주는대로 마시던 친구 하나가 제일 먼저 탁자에 쓰러졌다. 그 다음부터는 차례대로 하나씩 머리를 기대
어 가는것이 보였다.
설란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쩐일인지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의 사물들이 흐느적거리며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려 안간힘을 쓰며 버텼으나 차츰 초첨
이 일어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마침 그녀의 사내의 음성이 귀를 왱왱 울리듯 스쳐 지나갔다.
[얘는 아직 버티는데 약 좀 덜 쓴거 아니냐?]
[아까보니 다른 애들보다 덜 마시던데요 형님. 그래도 곧 갈겁니다.]
설란은 어렴풋이 들려오는 음성들을 생각하며 탁자가 얼굴에 다가오는 느낌에 스르르 눈을 감아버렸다.
-쿵!
##

의식은 깨어났는데도 육체는 제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온몸의 털이 다 서는 극심한 통증에 설란의 입
이 잔뜩 벌어졌다.
[아악!]
바둥거려 보았지만 물 먹은 솜처럼 흐느적거려지는게 전부였다. 억지로 눈을 부릅떠 상황을 파악하려 노랙했다.
그녀의 몸 위를 끈적한 눈길로 흔들리는 몸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봤더라...)
희미한 의식속에서 요란한 나이트클럽의 소음과 여러사람의 말소리가 섞인 음성들이 빠르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
갔다.
사내들 중에서 가운데에 앉아 있던 사내. 그였다.
설란의 눈이 찢어질 정도로 커져버렸다.
그와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은 모습으로 포개어져 있었다. 거기다 잔뜩 들려진 그녀의 두 다리를
흔들며 연신 허리를 움직일때마다 보지쪽에서 올라오는 통증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악! 악! 그만!! 그만!! 살려... 살려주세요! 아악!]
설란의 머리와 그의 한손에 잡혀 머리위에 놓인 손을 바둥거려 보았다. 하지만 육중한 힘에 머리만 움직였다.
[이런...씨발!]
보지를 쑤셔대던 움직임을 멈추며 그가 오만 인상을 써댔다.
[아다라시라 약이 금방 깨나...]
-츄욱~
[아악!]
보지에서 빠지는 자지에 잔뜩 피가 뭍어있었다. 설란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파과(破瓜)의 흔적이 분명했다.
[잠시만 참아. 곧 다시 홍콩 보내 줄테니...]
그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고 다시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에 들린 얇은 주사기가 섬칫한 느낌으로 그녀의 팔뚝으로 다가왔다.
[으...]
반항도 못하는 사이 은빛 바늘이 설란의 살을 뚫고 들어갔다.
설란은 머리속에서 쏴아~ 하는 파도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다.
(바닷가 일까...)
그녀의 시야로 반짝거리는 별이 한가득 들어와 눈으로 파고 들었다.
조금씩 게슴츠레 해지는 눈을 확인한 그가 다시 그녀의 가랑이를 치켜 들었다.
[자...이쁜이 계속해야지... 아다라시를 먹어본게 언제야. 후후...]
그의 자지가 그녀의 여린 보지를 헤집고 다시 파고 들었다.
[아흐흠...]
더이상 설란의 입에서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대신 몽롱하게 초점 잃은 눈이 목표를 잃고 먼곳을 직시했다.
-푸걱 푸걱 푸걱
[으...으... 으응...으흥...]
늘어진 몸이 제마음대로 놀아났다. 살짝식 새어나오는 숨소리와 신음이 자극이 되었는지 그의 움직임이 점차 빨
라졌다.
[역시... 영계맛인가... 후우....게다가 아다라시라니... 오늘 횡재한 느낌이구만...]
우왁스럽게 두 유방을 주무르는 그의 손 사이로 살들이 야하게 삐져 나왔다. 한번도 남자의 눈 앞에 드러난 적 없
던 그녀의 유두도 깨끗한 분홍빛을 발하며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쭈웁~쭙]
잘근 잘근 씹기도 하고 쭉 늘리며 빨아대는 그로 인해 유두와 유방에는 그의 침이 도배되고 있었다.
설란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을 유지하며 무심하게 벌어진 가랑이 사이의 보지가 조금씩 젖어오는지도 모른 채
아득한 쾌락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의 입에서 격한 신음이 이어졌다.
[우욱...욱...]
그는 자지를 빼지 않고 보지속으로 강하게 좆물을 짜내었다.
[후우... 이년 이거... 의외로 맛있네... 한번 먹고 보내기에는 아까운걸...]
피와 좆물이 범벅이 되어 흐르는 보지를 감상하던 그의 입가가 묘하게 꺽여 올라갔다. 그런데도 설란은 여전히 환
상속을 헤매는 길 잃은 사슴같은 모습으로 널부러져 있었다.
##

[멀쩡한 처녀가 이틀이나 연락이 없다구요! 그럼 뭔가 조치를 취해얄거 아닙니까! 네?!]
[어허. 일단 접수 해놔봐요. 이틀정도는 단순 가출로 볼수도 있잖아요. 그런걸 납치니 실종이니 하면 모든 경찰이
없어진 사람만 찾아야 한단 말입니까?]
[가출이라뇨! 우리 설란이는 그런 애가 아닙니다! 조사라도 해달란거잖아요! 좀 어떻게 해주세요!]
[아...글쎄. 일단 접수를 해 놓으시라고요. 접수 받아서 조사할테니...]
[이............]
##

[안녕하세요.... 저 설란이 오빠 되는 사람입니다. 혹시 그날 설란이랑 같이 계시지 않으셨어요? 아는게 있으면
뭐라도 좋으니 말씀 좀 해주세요.]
-전 몰라요... 일찍 헤어져서... 같이 있었던 다른 애들한테 물어보세요...그럼...


2

3일만에 나타난 그녀의 몰골을 보고 설민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초점없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처진 그녀의
어깨를 잡으려하자 대뜸 그의 손을 쳐냈다.
[오빠... 나 좀 쉴래...]
[어?.........어어.........]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채 이틀동안을 나오지 않았다. 물조차도 마시지 않고...
##

[얼른 먹어... 너 이틀동안 아무것도 않 먹었잖아.]
초췌해진 설란의 얼굴에 가슴이 아프면서도 설민은 아무말도 묻지 못했다. 무슨 말이라도 하게 되면 그녀의 상황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갈것 같은 불길함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먹어... 너 좋아하는 고등어도 구웠어. 바싹하니 맛있더라... 자...얼른...]
수저에 뜬 밥 위에 고기를 발라 놓아주자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 입속에 넣었다. 그런 그녀의 뺨으로 한줄기 눈물이
흘려내렸다.
설민은 그런 그녀의 뺨을 손등으로 닦아주며 다시 다른 반찬을 집어 들었다.
[자...얼른 먹고 몸 추스려. 아무말도 묻지 않을테니... 뭐가 되었든 난 네가 이렇게 돌아온것 만으로 다행으로 생각
할께. 얼른......먹어...]
연거푸 설민이 올려주는 반찬을 받아 먹은 그녀가 목으로 음식을 넘기지도 않은 채 그렇게 계속 씹어만 댔다.
숙여진 얼굴 사이로 연신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

유명하고 규모가 큰 성형종합병원으로 출근을 시작하고 한달이 지나면서 여전히 말수는 적었지만 그런대로 차츰
회복하는 설란을 보면서 설민은 한시름 놓았다.
뜬금없이 농담을 하면 제법 미소를 지어도 주었고 첫 월급이라며 사온 물건들을 꺼내며 이것저것 설명도 하는 모
습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아직도 그는 그녀에게 사라졌던 3일간에 대해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해주는것이 그녀를 위한
길이고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처럼 그에게는 그녀가 무사하게 있어주는것만이 전부일 뿐이었다.
##

무척이나 바쁜 덕분에 그녀는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갔다. 예약이 연일 밀려 진찰실과 수술실을 뛰어 다닌 덕분에
조금씩 끔찍했던 기억들이 잊혀지고 있었다.
넉살 좋은 그녀의 파트너 의사인 노총각 의사가 그녀에게 관심도 보이며 잘 해주어 몇달이 지나지 않아 금세 적응
이 가능했다.
그의 나이가 오빠인 설민보다 많아서 그렇지 그녀도 그가 왠지 싫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게 끌리는걸 알
게 되어가던 무렵 점심도 걸른 채 예약환자의 수술이 잡혀 있었다.
[오늘도 거절할꺼야? 데이트...]
수술복으로 갈아있는 그가 넌지시 그녀에게 물어왔다.
그의 등을 묶어주며 그녀는 채 사라지지 않은 아픔을 떠올리며 그에 대한 미안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거 우리 유간호사랑 데이트 기다리다가 나 할아버지 되는거 아닌가 몰라...]
거절로 받아들인 그가 농담으로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달래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각 파트별로 스텐바이가 끝나자 그가 심호흡과 함께 마스크 사이로 말해왔다.
[자... 시작합시다.]
코 성형 예약환자의 수술부위를 그리며 능숙하게 손을 움직이는 그를 보며 그녀는 이젠 더이상 아픈 생각으로 그
를 거부하면 안되겠다는 마음을 먹을 즈음에 갑자기 들고 있던 의료기구를 떨어뜨리며 입을 막아야 했다.
[으읍!]
헛구역질이 멈추지 않았다.
수술실의 모든 사람이 시선을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런데도 전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특히 그녀의
사내가 커다란 눈을 한 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으읍! 읍!]
설란은 어쩔수 없이 고개를 까닥이며 미안해 하고는 빠르게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그녀에게 집중된 시선을 등 뒤로 느끼며 그녀는 화장실로 급하게 들어가 변기에 얼굴을 들이댔다. 멈출것 같지 않
은 구역질이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사그러드는 느낌속에 그녀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고개를 쳐드는 불길함에 덜덜덜 떨기 시작했다.
##

[더러운 년... 순진하게 본 내가 병신이지... 뒤에서 호박씨 까는줄도 모르고...]
설란은 뭐라고라도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었다.
[그런 뻔뻔한 얼굴로 몇명이나 홀리고 다녔어? 엉? 정말 불결해. 내가 결혼을 못하고 있으니 만만해 보이던가?]
그녀는 죽고 싶었다. 아니, 죽으려 결심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할수록 설민의 모습이 그녀를 가로 막았다.
가슴을 부여잡고 그녀는 사내에게 온갖 모욕적인 말을 참고 그렇게 듣고 있었다.
설란은 조금씩 조금씩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오빠......)
그녀의 마지막 희망과도 같은 설민을 애타게 부르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3

검은 봉지를 흔들며 밝게 웃는 얼굴을 방으로 들이밀며 설민은 두리번 거렸다.
[설란아~ 설란아~ 너 좋아하는 귤 사왔다~]
그녀의 방도 확인해 보았다.
[설란아~ 어라? 얘가 가게 갔나?]
그는 부엌으로 시선을 돌리다 가지런히 놓인 그녀의 신발을 발견했다.
뜨끔하는 느낌이 심장을 파고 들었다. 하지만, 그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간절히 간절히 무언가를 빌기 시작했다.
욕실의 문이 조금 열려있다. 천천히 다가간 그가 떨리는 손으로 문을 젖혔다.
그가 들고 있던 봉지가 방바닥에 부딪히자 귤들이 여기저기로 굴렀다.
그는 털썩 주저 앉으며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며 시선을 떼지 못하는 곳으로 손을 들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
끝으로 허공에 매달린 그녀가 애처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재빨리 정신을 차린 그가 후다닥 그녀를 들어 목에 감긴 줄을 벗기려 애썼다.
[도와주세요! 설란아! 살려주세요!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 설란아...설란아...제발...설란아...으흑흑...제발.....
누구~ 누구 없어요! 으아악! 제발...제발...좀............도와주세요....우리...불쌍한...설란이 좀.....제바알!!!!]
떨리는 그의 울부짖음에 늘어진 그녀의 팔이 의미없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발을 디딘 의자에 하얀 봉투가 을씨년스럽게 놓여있었다.
설민의 울부짖음은 그러고도 한참을 계속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

-오빠라는 말만 적어도 벌써 눈물이 나네.......
-우리 오빠... 불쌍한 우리 오빠... 나 때문에 그 좋아하는 그림도 못 그리고...
-우리 오빠... 불쌍한 우리 오빠... 나 때문에 그 좋아하는 고기도 나 먼저 먹이려 했고...
-받기만 했으면서도 난 참 오빠에게 사랑 한번 못 해주고... 그러고 보니 난 참 못 된 동생이다 그치?
-지금쯤 오빠 많이 울겠지? 나도 계속 눈물만 나...
-살아보려 했어... 정말 살아보려 했어...
-문득, 하늘도 원망해봤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하면서...
-그런 하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또 다른 시련을 안겨주고 말았어. 임신 사실에 난 모든것이 무너지는 걸
-알게 되었어.
-오빠... 또 눈물이 나...
-이제껏 우리 오빠 때문에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살아왔어. 나만은 나만은 이쁘게 키우고 싶어했던 오빠의
-마음을 잊고 싶진 않아. 하지만, 난 지금 여러사람이 원망스러워... 왜 내가... 왜 우리가 이런 가슴 아픈 일만
-당해야 하는건지 모두가 원망스러워....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도 나에게 배신당한 기분일꺼야. 그 사람을 원망할 자격은 없지만...
-조금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더라면... 잠시만 내 얘기를 들어줬더라면...
-우리 오빠... 나 죽으면... 불쌍해서 어떡해... 그 생각만 하면 나 정말 가슴이 자꾸 아파...
-오빠... 정말 죽은 후에도 오빠를 볼수 있게 되면 꼭 오빠를 보러 올께... 오빠를 지켜줄께...
-우리 오빠... 내 몫까지 평생 잘 살수 있게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나중에... 나중에... 오빠 늙어서 만나게 되면 많이 혼날 각오하고 있을께... 못난 동생... 그때는 오빠에게 혼나도
-절대 울지 않을께......
-오빠... 사랑하는 우리 오빠... 다음 생애는 나 오빠의 여자로 태어나 오빠에게 사랑만 주며 살아가고 싶어...
##

[이제 그만 보내드리세요... 춥기도 하고... 저도 얼른 들어가야죠.]
뱃사공의 투덜거리는 소리에도 설민은 하얀 상자를 끌어안은 채 움직일줄을 몰랐다.
[아저씨... 돈 더 드릴테니... 조금만 더 있어주세요... 우리 동생... 추운 이곳에 뿌려야 하는데 잠시만 제가 더 안아
주고 싶어서 그래요...]
돈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측은했었는지 작게 혀를 차보던 뱃사공이 먼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얼지 않은 강물로 굵지 않은 눈이 닿자마자 물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천천히 보자기를 풀렀다.
엉성한 나무상자 안으로 작은 사기그릇이 뚜껑에 덮여있다.
시리디 시린 얼굴사이로 눈물이 다시 떨어졌다.
[추울텐데... 왜 하필 그런 유언을 하니...넌...]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이쁘고 사랑스럽던 설란이 한줌의 재가 되어 그릇 속에 담겨 있었다.
[으흑...]
그가 한손으로 가슴을 쥐어짜듯 움켜 잡았다. 아픔을 참으려 할수록 더욱 그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가늘게 떨리는 손을 집어넣어 한웅큼 가루를 집어 강물에 뿌렸다.
벌게진 눈에는 마치 핏물이라도 흘러내릴것 처럼 충혈되어 갔다.
[잊지 않으마... 이 오빠를...믿어...]
한웅큼의 가루가 다시 강물에 길게 뿌려졌다.
[올수 있더라도 오지마라. 나도 곧 갈테니... 하지만, 할건 하고 갈께... 기다려...]
다시 가루가 길게 뿌려졌다.
[아니다... 너랑...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겠구나... 넌 착해서 천국갔겠지만........................난 지옥 갈거 같아...]
어느새 설란의 흔적이 바닥을 드러냈다.
남은 가루를 움켜쥔 그의 손이 눈에 띄게 떨리는것이 뱃사공의 눈에 들어왔다.
측은한듯 그를 쳐다보던 그의 눈이 놀라움으로 변했다.
설민은 남아있던 가루를 입에 넣어 잘근잘근 씹어대었기 때문이었다. 한이 서린 그의 눈에 잔뜩 겁을 집어 먹은
뱃사공이 침을 꿀꺽 삼켰다.
뼛가루가 덕지덕지 입주위에 뭍어있는 표정없는 얼굴로 설민은 처절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난... 이제부터 악마(惡魔)가 될꺼야....설란아...]
그의 얼굴로 때 늦은 눈이 닿으며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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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뉴스입니다. 이번 달 들어 연속 세건의 살인사건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피해자들의 신원이 확인되면서 수사
에 활기를 띄게 된건데요. 보도에 김수철 기자입니다..........
-첫번째 희생자 발견당시 형체를 알아볼수 없이 훼손된 사체로 인해 신원 확인이 늦어지면서부터 오리무중이 되
어 가던 수사가 비슷한 수법으로 살해된 두 피해자가 발견되면서 연관성에 무게를 둔 경찰에 의해 집중조사가 이
루어진지 일주일. 오늘 국과수의 발표로 세 피해자 모두 같은 간호대학 동창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에 따라 피해자
주변의 탐문수사에 속도가 붙었음은 물론, 동일범의 소행이 확실시 되는 이상 용의자 확보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게 경찰의 입장입니다. 한편, 신원 확인이 마무리되면서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달려온 유족들 중 실신하는 이들이
속출하면서.................................................................................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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