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마녀의 전설 - 외전 - - 3부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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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외전 3부 1장


『 - 사족 -

지선 : "어머! 또 외전이어요?
이렇게 외전으로만 계속 나가실거면, 여주인공인 제 외전도 하나 써주셔요!
백색의 아름다운 요정 쟈넷 귀니비어(김지선)편....."

야설가 : "..... ㅡ_ㅡ
너무 길어져버린 감이 있지만..... 외전들은, 이야기의 전체 흐름상 지금 쓰고 넘어가는 게 맞아.
재연이 끌어들인 다섯 명을.....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 다섯 명"으로 계속 놔두는 것도 내키지 않을 뿐더러.....
외전을 통해서..... 전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위스토아"라는 세계를 묘사할 수 있거든.
너희들의 관점에서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위스토아의 다른 쪽 면을 보기 어려워."

지선 : "어머! 죄송해요, 작가님! "위스토아 여행안내서"를 쓰고 계신 건 줄 몰랐어요!"

야설가 : "..... ㅡ_ㅡ" 』


본 야설은 강간, 윤간, 성고문 수준의 SM 등 비윤리적이고 중범죄에 해당하며 잔인하고 하드코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취향의 글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은 읽으시지 말 것을 미리 권고 드립니다.





- 외전 3부 - 잊혀진 전설들 (밤비르(흡혈귀) 백작 카를로스 반 피제프편 : 피와 빵) - 1장 -


"두근! 두근! 두근! ....."

심장이 너무나 빠르게 뛰어, 가슴밖으로 터져나와 붉은 피를 뿜으며 폭발해버릴 것만 같다.

"푸르르르르르....."

매끈한 밤색털이 덮힌 그의 애마 피오도 긴장한 듯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투레질을 한다.


적의 기병(말탄 병사)들은 약 500여 기..... 은빛으로 빛나는 전신(몸전체) 철판 갑옷을 입은, 50여 기의 말탄 기사들을 앞세우고, 정면에서 위풍당당하게 돌격해오고 있다.
그보다 약간 적은 수인 약 450여 기의, 아군 기병들이 마주 돌격해 나간다.
박치기라고 하려는 듯, 엄청난 속도로 마주 달려나간 양쪽이 부딪치기 직전.....

"셋, 둘, 하나..... 지금이다!"

"채앵!"

검날 양옆이 톱니 모양으로 되어 있는, 가문의 보검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를 뽑아들며, 20세의 젊은 백작 카를로스 반 피제프는 목청이 터질 듯 큰 소리로 외쳤다.

"자랑스런 피제프가의 기병들이여! 돌격하라!
영광을 위하여!"


"영광을 위하여!"

"채앵! 채앵! 챙! ....."

일제히 입을 모아 외치며 마상 검(말위에서 휘두르는 검)을 뽑아드는 50여 기의 기병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

땅을 울리는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피제프 백작가의 기병들이 일제히 돌격을 시작했다.

정면에서 적과 맞붙기 시작한 주력부대와는 별도로..... 처음부터 주력부대 왼편에 따로 떨어져 모여 있던 피제프가의 기병들은, 약간 비스듬한 각도로 치고 들어가며, 적의 왼쪽 측면(옆쪽)을 노렸다.

전력으로 질주하는 애마 피오의 근육이, 그 혈관에서 용솟음치는 붉은 피의 맥박이..... 허벅지 아래에서, 터질듯 용솟음치는 것이 느껴졌다.

측면에서의 돌격을 알아차린, 가장 바깥쪽의 적의 기병들 몇 명이 이쪽을 돌아보며 놀란 표정들을 지었지만.....
이미 늦었다.


"촤아아아아악!"

대각선으로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둘러진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의 톱니 검날이, 갑옷과 투구 사이로 드러난, 적의 목을 비스듬히 잡아 찢었다.
분수처럼 뿜어 나오는 적의 붉은 피가 사방으로 뿜어 나오며, 얼굴을 따뜻하게 적셨다.


"차캉! 쾅! 챙! 챙! 쾅! 콰쾅! ....."

"히히히히히히힝! 히히히히힝! ......"

뒤따르던 50여 기의 부하 기병들이 연달아 적과 충돌하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검을 부딪치고 몸을 부딪쳤다.


"차카캉!"

두번째 적과 마주 검을 부딪쳤다.
전신을 감싸는 철판 갑옷을 입고 있는 정식 기사였다.

"까드득!"

마주 부딪치는 순간 "샹 망게러"의 톱니 검날을 비틀어 검날끼리 걸리도록 만들어, 순간적으로 적의 검의 움직임을 멈췄다.
미움으로 일그러진 적의 얼굴이 일순간 당황한 표정으로 바뀌는 찰나.....

"푸우우우욱!"

다시 한번 검날을 비틀면서 똑바로 내지른 검이 적의 굵은 목을 관통했다.
또다시 얼굴에 덮어쓴 붉은 피의 촉감이 뜨겁게 느껴졌다.


"돌격! 적의 측면을 관통하라!"

온 전쟁터에 울릴 정도로, 목이 터지도록 힘껏 소리를 질렀다.
옆에서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서, 적을 당황하게 하고, 아군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서다.
얼굴을 온통 덮고 있던 붉은 피가 입안으로 흘러들어, 짠 맛과 함께 구역질나는 비린내가 느껴졌지만 뱉어낼 틈도 없었다.


"퍼어어억!"

옆에서 부하와 맞붙고 있던 또다른 적의 기병의 목을 뒤에서 후려갈겼다.

"히이이이이이이이잉!"

머리가 날아가버린 주인의 손이 말고삐를 놔주지않는 바람에, 타고 있던 말이 옆으로 넘어지며 숨넘어가는 비명을 질러댔다.
목없는 몸통이 작은 분수처럼 사방으로 붉은 피를 뿜어냈다.


"돌격! 돌격!"

연거푸 함성을 질러대자, 가문의 사병들인 부하들이 호응하여, 일제히 목청껏 소리쳤다.

"돌격! 돌격!"


당황하는 말위의 적들을 향해 연거푸 톱날의 검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를 휘둘러 댔다.
네 명째, 다섯 명째, 여섯 명째..... 더 이상은 그만, 세는 걸 잊어 버리고 말았다.

표적은 갑옷과 투구 사이의 목와 얼굴 등 피부가 드러난 부위들.....

맞으면 치명적인 것은 모든 검이 마찬가지지만.....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의 톱니 검날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적의 피부를 잡아찢고 상처를 벌려서 사방으로 붉은 피가 튀어오르게 만든다.
매끈하고 예리한 날을 갖는, 일반적인 마상 검(말위에서 휘두르는 검)들에 비해서, 깊게 베는 예리한 맛이 떨어지는 일종의 기형검.....

그 대신,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는 잔인한 모습으로 적을 움추리게 만드는 효과와.....
톱날에 적의 검날이 걸리도록 해서, 순간적으로 적의 검을 잡아주는 능력을 갖고 있다.


"촤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얼굴에 대각선으로 톱날 검을 맞은 적의 기병 한 명이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리고,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쥔 채 비명을 질러댔다.
저런 적은 베지 않고 그냥 놓아둔다.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아군보다도 더 고마운 적군이니까.....


"푸우욱!"

예리한 검날이 비명을 지르던 적의 등뒤로부터 관통해, 가슴으로 뾰족한 끝이 뚫고 나왔다.
아군의 검에 찔린 것이 아니었다.

어깨에 감은 푸른 천이, 검을 찌른 자가..... 같은 편인, 적 몬스아 왕국 소속의 기사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기를 떨어뜨리는, 한심한 자를 처단했던 것이다.

전신을 두른 철판 갑옷 차림에, 얼굴 전체를 덮고 있는 투구의 눈있는 자리에 가로로 긴 홈이 뚫려 있을 뿐, 피부가 드러난 부위가 전혀 없는 모습의 기사였다.
적어도 3헥사 8토르(약 190센치)는 되어 보이는, 어깨가 떡 벌어진 큰 덩치에, 검은 사자가 가슴에 새겨진, 빛나는 은빛 갑옷을 입은 저 모습은.....
(1헥사 = 약 50센치, 1토르 = 약 5센치)

"몬스아 왕국의 로드 데 아미츠(기사단장) 칼라마 반 마케나 백작이다!
제법이구나, 애송아!"

"일레기아 왕국의 아미트(기사)인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입니다.
검을 섞게 돼서 영광입니다."

뒷골목의 3류 깡패들이나 험악한 쌍욕을 해대는 짓 따위로, 적의 기를 죽이려고 한다.
여유로와 보이기까지 하는 예의바른 태도와 침착한 목소리는..... 당장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전쟁터 한복판에서, 어떤 험한 욕설보다도 적을 겁먹고 움추리게 만들 수 있다.


잠시 주춤하는 듯 했던 적의 양날검이 똑바로 찔러 들어왔다.
얇고 길고 예리한 느낌의 전형적인 마상 검(말위에서 휘두르는 검)이다.

"차카카캉!"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를 가로로 휘둘러 막아내며, 검날을 살짝 비틀었다.

"까드드드드득!"

불꽃이 튀며, 톱날의 검날이 적의 검날에 걸리면서 적의 검의 움직임을 일순간 멈췄다.

그러나.....

"차카캉! 차캉! 창! 창! 창!"

연속으로 이어진 찌르기 공격을, 적인 칼라마 백작은 손쉽게 막아냈다.


과연, 적의 기사단장..... 투구가 얼굴 전체를 덮고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최소한 마흔을 넘은 나이의 노련한 전사일 것이다.

소리도 없이, 칼라마 백작의 얇고 긴 마상 검이 파란 빛으로 화려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소드 바인(검기)..... 상급 이상의 기사들의 기술로, 자신의 마나(에너지, 기운)로 검을 덮어 씌움으로써, 검의 예리함을 크게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쇠를 자르고, 바위를 쪼개는..... 검으로는 보통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고급 기술이다.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의 톱니 검날도 이에 응하듯 새하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적인 칼라마 백작의 검이 뿜어내는 소드 바인(검기)의 파란 빛이, 이편의 새하얀 빛보다 눈에 띄게 훨씬 밝아 보였다.
소드 바인의 강도가 반드시 검술 실력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경우에는 아마도 검술 실력의 차이와도 일치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파란 빛으로 빛나는 얇은 양날 검이 찔러 들어왔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세련되고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차카카캉!"

"까드득!"

막아내면서, 톱니 검날을 또다시 비틀어 상대방의 검을 잡아보지만, 변칙 기술 정도에 당할 정도로 약한 상대가 아니었다.


"창! 차장창창창창창창창!"

적의 양날 검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연속으로 찔러 들어왔다.
스스로도 막아낸게 용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파랗게 빛나는 검이 그리는,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움직임은 세련되고, 아름답게까지 보였지만..... 단, 한 번이라도 막지 못하면, 곧바로 저승으로 인도하게 될 죽음의 사자.....


지금도 사방에서, 그의 부하들과 적의 기병들이 피터지게 서로 검을 부딪치고 싸우면서, 악에 받친 함성과 비명들을 질러대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이 세상에, 오직 적인 칼라마 백작과 자신, 두 사람밖에 없는 듯..... 사방이 고요하게까지 느껴졌다.

두 사람 모두, 입으로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말 위에서 빛나는 검을 휘두르며 서로의 급소를 노렸다.
빠르고도 정확한 적의 움직임이 점차 자신의 움직임을 압도하는 것을 느끼며, 죽음의 신의 손짓이 보이는 듯한 오싹한 기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까가가가가가강!"

"으윽!"

왼쪽 어깨를 찔러들어오는 적의 얇은 검날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소드 바인(검기)으로 빛나는 상대방의 검이 철판갑옷의 어깨판을 손쉽게 뚫어버리며, 살까지 깊숙히 베어 버렸다.

"주르르....."

베인 상처에서 흘러내린 붉은 피가..... 이미 적의 피로 얼룩져 있던 은빛 갑옷 한쪽을 이번에는 자신의 피로 붉게 물들여갔다.


"쿠쿠쿡!"

얼굴을 덮고 있는 투구 속에서, 적의 비웃음소리가 얼핏 들린 듯 했다.


"차카카캉!"

또다시 찔러들어오는 적의 양날 검을 힘겹게 막아내지만, 아무래도 오래 막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힝!"

그때였다.
갑자기, 적의 말이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뒷발로 벌떡 일어서 버린 것은.....

"와아아아앗!"

갑작스런 말의 발광에, 노련한 전사이자 강적인, 기사단장 칼라마 백작도 당황한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억센 손으로 고삐를 휘어잡아 말을 진정시키며, 겨우 제 자리로 돌아오는 찰나.....


"푸우우우욱!"

"끄으으으윽!"

가슴께에서 느껴지는, 불에 덴 듯한 화끈한 감각에, 칼라마 백작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나왔다.
흐트러진 틈을 놓치지 않은 톱니 검날이..... 철판 갑옷을 뚫고, 왼쪽 가슴 깊숙히 틀어 박혔던 것이다.


"끄아아아! 끄으으으으으으으으....."

"퍼억! 퍼퍼퍼퍼퍼퍽!"

왼쪽 가슴 깊숙히 찔러넣었던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를 잡아뽑자,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어 오르며, 피보라를 만들었다.

"샹 망게러"를 뽑음과 동시에, 심장이 확실하게 터져버린 듯한 칼라마 백작의 숨이 끊어지면서.....
백작의 몸이 말위에서 드러눕듯, 벌러덩 뒤로 넘어갔다.
양발이 등자(안장에 달린 발을 거는 자리)에 걸린 탓에, 말위에서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고 있었다.


"챙그랑!"

그제야 손에서 떨어진, 칼라마 백작의 얇고 긴 마상 검이 파란 빛을 잃으며 바닥을 굴렀다.


"휴우!"

그제야 한숨을 돌린, 젊은 백작 카를로스가 고개를 저으며 숨을 몰아 쉬었다.

"허어억! 허억! 허어억!"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벅찬 상대였다.
자신의 검술 실력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던 칼라마 백작을 해치울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순전히 행운이었지만, 사실 행운보다도.....


"네 덕분에 살았다, 피오!"

다른 적들의 기습을 경계하며, 고삐를 잡고 있던 왼손으로 애마 피오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 주었다.

"푸르르르르....."

금속제 장갑을 끼고 있어 좋은 느낌은 아니었겠지만, 그의 애마 피오가 대답하듯 친근한 소리를 냈다.
말의 입가가 온통 피로 물든 채로, 갈색의 긴 갈기털들이 아직까지도 입가에 물려 있었다.

조금전 적의 기사단장 칼라마 반 마케나 백작의 말이 갑자기 발광했던 것은..... 사실, 우연히 발생한 행운은 아니었던 것이다.
주인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아차린, 피오가 칼라마 백작이 타고 있던 갈색 말의 목을 사정없이 물어뜯은 것이 발광의 이유였다.


"허억! 허억! 허억!"

덮어쓴 피와 함께 땀으로 온통 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보려고, 왼손으로 문질렀지만.....
손까지 덮고 있는 두꺼운 금속 장갑때문에 제대로 닦이질 않았다.

다른 적들의 기습을 조심하면서, 말위에서 뒤로 축 늘어져 있는 칼라마 백작의 시체쪽으로 애마 피오를 몰았다.

어깨의 상처가 쿡쿡 쑤시는 왼손을 억지로 움직여, 칼라마 백작의 투구끝 장식을 잡고 잡아당겨, 투구를 벗겨 냈다.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한 금발 머리와 콧수염을 기른 칼라마 백작의 얼굴이 드러났다.
눈을 감은 채 비교적 평온한 표정으로 숨져있었다.

백작의 금발 머리카락을 왼손으로 단단히 틀어쥔 채로, 오른손에 든 톱날검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로, 투구가 벗겨져 드러난 굵은 목을 내리쳤다.


"퍼버벅! 뚝! 뚝뚝뚝뚝뚝!"

머리쪽에 몰려있었던 듯한 붉은 피가, 포도주 통을 엎은 것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잘린 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붉은 피를 온통 덮어쓰면서도.....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은 칼라마 백작의 떨어져나간 머리를 왼손으로 높이 치켜들었다.


"후우우우우웁!"

숨을 크게 들이 마쉰 후, 목청껏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적장 칼라마 반 마케나 백작의 목을 베었다!
우리가 이겼다!"

주위에서 싸우고 있던 부하 기병들이 그 소리를 받아, 입을 모아 함성을 질러댔다.

"적장의 목을 베었다!
우리가 이겼다!"

안 그래도, 피제프 백작가의 정예 기병들의 측면 공격을 받으면서부터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던, 적의 기병들이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열이 흐트러지면서, 가장 뒤쪽부터 한 기씩, 두 기씩 꽁무니를 빼며 말을 거꾸로 돌려 도망치는 기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침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져 버리며..... 모두 도망치기에 바쁜 지경이 돼버리고 말았다.


"돌격! 도망치는 적들을 섬멸하라!"

다시 한번 목청껏 소리를 지른 후, 쓸모를 다한 칼라마 백작의 잘린 머리를 망설임없이 바닥에 던져 버렸다.


"자! 다시 가 볼까?"

톱니 날의 검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를 높이 치켜든 채,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은 고삐를 잡고 있던 손을 늦추며, 피오의 옆구리를 양발로 가볍게 두들겨, 전력으로 달리라는 신호를 했다.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적의 기병들의 뒤를 쫓아, 아군의 기병들과 함께 질주했다.

적의 대장들은 몇차례 함성을 지르며 후퇴를 멈추고 대열을 정비해 반격을 시도하려 애썼으나..... 이미 대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마침내, 적이 처음에 서 있던 자리 뒷편에 있는 작은 언덕까지 아군의 기병들이 차지하면서.....
언덕 위에서 높이 휘날리고 있던, 파란 색 깃발이 걸린 나무 깃대가, 선두의 아군 기병이 휘두른 마상 검(말 위에서 휘두르는 검)에 맞아,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


"우리가 이겼다!
일레기아 왕국 만세!"

"일레기아 왕국 만세!"

아군 기병들의 열광적인 함성 소리가 전쟁터에 울려 퍼졌다.



"허허허허허허! 우리 편이 이겼군!"

금실, 은실로 수놓아져 화려한 느낌의 갈색 로브(헐렁하고 긴 겉옷)를 입은, 노인이 멋으로 기른 하얀 턱수염을 왼손으로 쓰다듬으며, 흐뭇한 웃음을 터뜨렸다.
머리에는 루비, 사파이어 등 빨갛고 파란 갖가지 보석들로 덮힌, 화려한 황금 왕관을 쓰고 있었다.

"폐하의 크나큰 덕과 운에 힘입은 바옵니다!"

아첨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옆에 앉아 있던 다른 노인이 말을 꺼냈다.
그 또한 보석으로 치장된 화려한 갈색 로브 차림이었지만,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있지 않았다.


"으으음..... 쓸모없는 것들!
먹고 무술만 닦는다는 것들이 막상 싸움에서는 도망가는 겁장이들이라니..... 한심해서, 원!"

색색의 보석들과 금실로 장식된 남색 로브를 입은, 뚱뚱한 노인이 뒤이어 투덜거렸다.
머리에는 작은 황금 왕관을 쓰고 있었다.


계단처럼 층층이 위로 올라가는 모양의, 나무로 된 구조물 위에 부드러운 빌로도 천을 깔아놓고.....
갈색 로브 차림의 사람들과, 남색 로브 차림의 사람들이 양쪽으로 나뉘어서 앉아 있었다.
모두들 오른손에는 투명한 수정구슬이 끝에 달린 긴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나무로 된 층층 구조물은 마치 경기장의 관람석처럼 보였다.

아니, 관람석처럼 보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관람석이었다.


그렇다.
방금 전의 싸움은 진짜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쟁을 진짜, 가짜로 구별하는 자체가 약간 우스꽝스럽기도 하거니와.....
사람들이 진짜 무기를 휘둘러서 진짜로 서로 죽였으니, 진짜 전쟁이 아니냐고 할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어느 한쪽이 다른쪽의 영토에 쳐들어가서 그에 대항해 맞서 싸운다거나,
영토, 재산, 생명 등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걸고 싸운다는..... 그런 의미의 전쟁은 아니었다.

단지, 마법사들의 재미를 위해서, 양쪽을 합쳐서 1,000여 명 가량의 사람들이 동원된..... 일종의 여흥거리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했던 것이다.


마법사와 전사가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이 고전적인 질문에 대한 고전적인 답변은..... 가까운 거리에서는 검이나 도끼같은 무기를 휘두르는 전사가 유리하고, 먼 거리에서는 마법을 쓰는 마법사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그나 매기아(위대한 마법)력 1,082년에 해당하는 지금의 위스토아에서 다시 그 질문을 한다면..... 어린애라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가까운 거리건, 먼 거리건 관계없이..... 마법사가 이긴다.


만물을 구성한다고 믿어지는, 물, 불, 바람, 흙..... 이 4대 원소의 힘을 끌어들여 한점에 집중시킴으로써, 초월적인 현상을 불러 일으키는 기술 - 그것이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마법의 정의였다.
그러한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오랜 명상과 집중 훈련을 통해, 주위의 4대 원소의 힘을 느낄 수 있게 된 존재 - 마법사가 몸안의 마나(에너지)를 움직여서 주위의 원소들의 힘을 자신에게로 끌어들인 후, 다시 원하는 형태로 바꿔야 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정신의 집중을 위해 긴 주문을 외우면서, 주문의 각 단계별로 가장 효율적이라고 알려진 방식으로.....
필요한 원소의 힘을 끌어들이고, 끌어들인 힘을 원하는 형태로 바꾸고, 다시 밖으로 뿜어내는..... 매우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짧아야 눈을 열 번 깜빡일 정도에서(약 10초), 길면 큰 모래시계가 3분의 1쯤 떨어질 정도의(약 10분) 시간.....
어떤, 매우 신사적이고, 머리는 완전히 텅빈 전사가 있어..... "주문 다 끝나갈 때 되면 얘기해!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나는 찌르고 너는 쏘자!" 하고 기다려주겠는가.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메모리아(기억)라고 불리는 마법이 개발되어, 미리 거의 다 외워둔 주문을 머리 속에 저장시켜 뒀다가 필요할 때 불러내는 것도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작은 마법 3발, 큰 마법 1발 정도를 저장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지금은 전설이 된, 위대한 다크 매기아러(흑마법사) 쟈스퍼 로클라니는 마침내 생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잘 모르는 마법을 사용할 때는 어쩔 수 없더라도.....
이미, 어떤 원소의 힘을 얼마나, 어떻게 불러내서, 어떻게 변형해야할지 잘 알고 있는 마법을 사용할 때..... 왜 매번 긴 주문을 번거롭게 외워야 하는가.
원소의 힘을 다루는 과정을 주문없이 가능한 빨리 그냥 처리해버리고, 주문의 시동어(힘의 순간적인 방출을 위해, 마법을 쓰는 마지막 순간에 외치는 말)만 외치면서 마법을 사용해도 되지 않겠는가.

쟈스퍼의 생각은..... 인간의 몸 하나쯤은 우습게 산산조각내 버릴 수도 있는, 4대 원소의 어마어마한 힘을 너무 쉽게 생각한, 어리석고, 정신나간 자살시도 정도로..... 비웃음을 받으며, 무시되었다.
그러나, 쟈스퍼와, 그와 생각을 같이한 몇 명의 다크 매기아러(흑마법사)들은 이러한 마법 속사(빨리 쏨) 기술을 계속 연구했고.....
마침내 놀랍게도, 가장 간단한 마법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정복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긴 주문으로 마법을 불러내는 과정과 방법을 확실히 익힌 뒤에야, 익숙해진 마법에 한해서..... 이러한 마법의 속사가 가능한 것이었지만, 참으로 놀랄만한 발전이었다.


게다가, 쟈스퍼의 마법 속사 기술과 비슷한 시기에, 또 하나의 마법 바레라가 개발되어 마법사들간에 널리 퍼졌다.

바레라는..... 마법, 물리력을 포함해서 모든 종류의 적대적인 공격으로부터 마법사를 지켜 주는, 방어막을 만드는 마법이었다.
매우 편리하게도, 바레라(방어막)를 걸어놓은 채로...... 마법사는 하고 싶은 대로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마법을 거는데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다.

요컨데, 바레라(방어막)를 자신에게 건 마법사가 쏘는 번개 마법은 자신의 바레라를 깨뜨리지 않고도 밖을 향해 날아갔지만,
다른 마법사가 그 마법사를 향해 쏘는 번개 마법은 바레라(방어막)가 막아 주었고.....

부적절하지만 극단적인 예로, 바레라(방어막)를 자신에게 건 마법사가 여자를 강간할 경우,
여자의 몸을 손으로 주무르든, 여자의 몸에 자기 것을 삽입하든..... 마법사는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여자가 반항하면서 마법사의 따귀라도 때리려고 한다면, 그런 여자의 손길은 바레라(방어막)가 작동하면서 막아 주었다.

게다가, 그 엄청난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바레라 마법은..... 9레벨까지 있는 마법의 여러 단계중 비교적 초보에 속하는, 겨우 2레벨 마법이었다.

물론, 바레라(방어막)는 결코 무적의 방어막이 아니어서, 충격을 받으면 깨져 나갔고.....
특히, 소드 바인(검기)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강력한 전사들은 마법사들의 바레라(방어막)를 비교적 쉽게 깨뜨릴 수 있었지만.....


마법 속사 기술과 바레라(방어막)의 두 가지를 손에 쥐게 된 마법사들은, 일반적으로, 전사들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점차, 세상의 지배자들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소드 바인(검기)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전사들은..... 주로 얼마 안되는 귀족 가문 등에서, 자신의 자식들에 한해서, 오직 혈연(핏줄)에 의해, 소수만이 양성(가르쳐서 길러냄)되었지만.....

학문의 일종으로 여겨졌던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들은..... 마법학교나 개인 마법사들의 탑에서, 만족스러울 정도의 수업료만 낸다면 자식이든 남이든 누구라도 상관없이, 대량으로 양성되었던 것이다.


질과 양, 양쪽 모두에서 전사들을 압도하게 된 마법사들은..... 자기들끼리 힘을 합치고 뭉쳐서, 기존의 제국들과 왕국들을 차례로 붕괴시키거나 약화시키고,
마법사들이 지배하는 5개의 제국과 7개의 왕국들을 세워, 위스토아 전체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특별히 시점을 따로 기록해 둔 사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전설적인 다크 매기아러(흑마법사) 쟈스퍼 로클라니가 마법의 속사 기술을 처음 개발해 냈으며,
바레라(방어막) 마법이 개발되었다고 믿어진 해를 기점(시작점)으로..... "마그나 매기아(위대한 마법)" 라는 새로운 연도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마그나 매기아(위대한 마법)력 1,082년.....

마법사들의 이웃한 왕국들인, 하피니아 왕국과 만수리아 왕국, 두 나라의 국왕들과 그 휘하 귀족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지배하에서 이름만 남아있는, 일반인들의 왕국 몬스아와 일레기아의 기사들을 불러다가 목숨을 건 전쟁을 시켜놓고.....
지구라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이종 격투기라도 보듯, 재미있게 관람하며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1,000여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니 만큼, 이종 격투기 대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피튀기는 구경거리였지만.....

이러한 모의 전쟁은, 왕자의 탄생이라든가, 양국 국왕이나 고위 귀족들간에 풀어야 할 다툼거리가 발생한다든가..... 적당한 핑계거리가 생길 때, 몇 년에 한번씩 열리곤 해서.....
이번 모의 전쟁의 경우에는..... 경계가 약간 모호한 국경선 분쟁의 원만한 해결이 그 핑계거리였다.

물론, 남의 아들 탄생 기념이라든가, "우리편이 이기면 이번 국경선 분쟁건은 양보하시오!" 등의 바보같은 이유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열받아 펄쩍뛸 일이었지만.....


평상시에 연마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싸움기술들을 써먹을 기회를 줬으니, 마법도 쓸줄 모르는 미천한 일반인인 데다가, 하는 일없이 놀고 먹기만 하는 왕이나 귀족들은 마땅히 감사해야 할 거라고..... 마법사들은 자기들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몬스아 왕국과 일레기아 왕국의 왕들과 귀족들로서는..... 왕국이라는 이름만이라도 남겨놓고, 살려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이었다.
왜냐하면, 마법사들의 제국과 왕국들중 가장 강력한 글레이셔(얼음) 제국같은 경우에는..... 지배하에 들어온 영토 내에 있던, 기존의 왕족과 귀족들을 아예 모조리 말살해 버렸던 것이다.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나무로 된 관람석 앞으로, 파란 천을 어깨에 감은 몬스아 왕국의 기사 및 기병들과, 빨간 천을 어깨에 감은 일레기아 왕국의 기사 및 기병들이, 각각 직사각형 모양으로 도열해서 말에서 내려섰다.

패배한 몬스아 왕국 사람들이 눈에 띄게 움추려든 표정으로 고개들도 제대로 못들고 있는데 반해서,
일레기아 왕국의 기사들과 휘하의 기병들은 자뭇 자랑스런 표정으로 어깨들을 펴고 있었다.


색색의 보석들과 금실로 장식된, 화려한 남색 로브를 입은, 하피니아 왕국의 국왕이자 마법사인 테세마 8세가 뚱뚱한 얼굴에 인상을 썼다.

"쓸모없는 것들! 하는 일도 없이 무술 수련을 한답시고 놀고 먹는 주제에..... 적을 보면 도망치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왕족들과 귀족들에게 매우 모욕적인 말이었지만.....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년에 바칠 세금은 2배로 올려서....."


"213만 6254세테르이옵니다, 폐하!"

옆에 앉아 있던 남색 로브 차림의 마법사가 공손한 말투로 수치를 알려 주었다.


"210만 세테르로 한다!
물론, 일반 백성들에게서 걷는 세금은 100중의 40의 통상 비율 그대로, 조금이라도 높여서는 안된다."


온통 피투성이가 된 지저분한 몰골에, 구겨진 인상의 얼굴들로..... 말그대로 전쟁에 패배한 자들의 모습을 하고 있던, 몬스아 왕국의 기사들이 서로 쳐다보며, 얼굴들이 파랗게 질렸다.
요컨데, 갖고 있는 돈에서 내놓으라는 말..... 몬스아 왕실은 물론, 대부분의 귀족들은 따로 모아놓은 돈들이 별로 없었으니 만큼, 사실상 굶어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설마, 정말로 굶어 죽을 지경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수입이 줄어서는, 전쟁을 벌이는 것은 고사하고, 정상적인 군대조차 제대로 유지할 수 없을 것이었다.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영역에서 정해진 금액의 세금만 걷어서 주면, 땅 주인이 누가 되든 상관하지 않았으니.....
자칫하면, 몬스아 왕국은 그대로 멸망해버릴 수도 있었다.


"폐하!"

몬스아 왕국의 기사들중 가장 앞에 나와 서 있던 자가 왼쪽 무릎을 세운 자세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몬스아 왕국의 둘째 왕자 듀몬트 데 몬스아였다.
온통 지저분한 몰골의 다른 자들과는 달리, 전신을 감싸고 있는 그의 철판 갑옷은 은빛으로 깨끗하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위험한 싸움에 직접 참가하지 않고, 안전한 뒤쪽에 따로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지난 400여 년간 폐하의 하피니아 왕국에, 속국(종속된 나라)으로서 충성을 바쳤던, 저희 몬스아 왕국을 이렇게 저버리지 마소서!"

왕족으로서의 체면을 버리고, 무릎까지 꿇으면서 애타게 하소연했으나.....
하피니아 왕국의 국왕 테세마 8세는 뚱뚱한 얼굴에 짜증스런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자비를 베풀어서..... 이몸의 체면에 먹칠을 한 너희 미천한 것들을 살려서 돌려보내는 것이다.
꺼져라! 이몸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이미 아무리 사정해야 틀려버린 것을 알고, 듀몬트 데 몬스아 왕자가 힘없는 얼굴로 일어섰다.
전체 500여 명중 살아남은 기병들은 300여 명 남짓, 게다가 유능하고 충성스런 기사단장 칼라마 반 마케나 백작까지 잃고 말았다.
뒤따라 말에 오른 몬스아 왕국의 패잔병들이 기운없이 전쟁터로 향했다.
자기편 시체들을 거둬서 떠나려는 것이었다.


"허허허허허! 참으로 장하도다!

갈색 로브를 입은 만수리아 왕국의 국왕 퀸타비오 데 만수리아가 뒤이어 입을 열었다.
나이든 마법사들이 멋으로 흔히 그러듯, 길게 기른 하얀 턱수염을 왼손으로 쓰다듬으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폐하의 은혜 덕분이옵니다."

일레기아 왕국의 첫째 왕자인 리안 데 일레기아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대답했다.
전신을 감싸고 있는 그의 철판 갑옷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와 먼지 투성이였다.
몬스아 왕국의 둘째 왕자 듀몬트와는 달리..... 그는 왕위 계승권자인 첫째 왕자이면서도 싸움에 직접 참가해서, 정면에서 마주 돌격한 450여 기의, 일레기아 왕국 주력 기병들을 이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새빨간 색의 머리카락과 눈썹, 보석처럼 새파란 눈동자가 돋보이는, 리안 왕자의 잘생긴 얼굴은..... 아니꼬운 감정을 억지로 참느라 굳은 표정이었다.
고작, 마법사들의 여흥거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자체가..... 속이 뒤틀리고, 참을 수 없이 분했던 것이다.
이제 겨우 23살인 젊은 나이인데다가, 성격이 불같이 급한 다혈질인 리안 왕자는..... 감정을 좀처럼 감추지 못하는 편이었다.


"내년에 바칠 세금은 특별히 절반으로 감면해서....."


"그러면, 52만 세테르가 되옵니다, 폐하!"

재무대신으로 보이는 갈색 로브의 마법사가 공손하게 설명해 주었다.


"50만 세테르로 해 주겠노라!"


"폐하의 크신 은혜가 하늘과 같사옵니다!"

말은 공손했으나, 젊은 리안 왕자의 깨끗이 면도된 얼굴은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참, 그대도 뛰어났지만..... 별동부대를 이끌고 측면을 찌른 장군이 꽤 제법이었노라.
톱니달린 무식하게 생긴 검을 휘두르던 자가 여기 있는가?"

퀸타비오 데 만수리아 국왕의 말에,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오른손을 가슴에 댄 채, 공손하고 깊숙하게 허리를 숙였다.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이옵니다, 폐하!
기억해 주셔서 영광이옵니다."

2미터 가까운 큰 키에 딱 벌어진 어깨, 짙은 갈색 눈에, 매끈하게 면도를 한 얼굴이었다.
투구를 벗고 있는 지금은, 검은 색의 머리가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호오!"

만수리아 왕국의 국왕 퀸타비오가 사람좋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리안 왕자도 그렇고, 카를로스 백작 그대도 그렇고..... 참으로 잘들 생겼도다!
일레기아 왕국에서는 외모를 기준으로, 왕족과 귀족들을 정하는 겐가? 허허허허허!"

갈색 로브 차림의 신하들이 따라서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모욕적이라면 모욕적인 내용의 말에, 옆에 서 있던 리안 왕자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으나,
20세의 젊은 카를로스 백작은 마법사들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악의로 하는 농담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잘해야 20살 정도로 보이는데 벌써 백작이라고?"


카를로스 백작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폐하!
신의 부모님들께서는 심장 발작으로 모두 일찍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대가 작위를 빨리 받으려고, 뭔가 일을 저지른 건 아닌가? 허허허허허!"

퀸타비오 데 만슈리아 국왕의 말에 주위의 신하들이 또 한번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좋은 인상의 노인이자 마법사인, 퀸타비오 국왕은..... 아무래도, 실없는 농담을 해서 주위 사람들을 웃겨주는 취미가 있는 듯 했다.


농담이라도 너무 지나친 말에, 리안 왕자는 저도 모르게 발끈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카를로스 백작은 매끈한 얼굴에 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랬다면, 지금 이 자리에는 저 대신, 제 아버님이 서 계셨을 것이오나.....
유감스럽게도, 병으로 쓰러지신 것이 사실이옵니다."


"허허허허허!"

재치있는 대답에, 퀸타비오 국왕이 다시 사람좋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대는....."

웃음을 멈추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은, 국왕이자 마법사인 노인의 녹색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매기아(마법)에 재능이 있도다!
그것도 상당히 뛰어난.....

어떤가? 그런 콩알만한 왕국의 신통찮은 백작 자리 따위 때려치우고, 이몸의 밑에 근위대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국왕의 주위에 앉아있던 갈색 로브 차림의 마법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서로 얼굴을 쳐다 보았다.
실없는 농담을 즐기는 노인네였지만, 퀸타비오 국왕은 마법사로서는 사실 대단히 뛰어난 자..... 국왕이 마법에 재능이 있다고 봤다면 그 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근위대장이라는 자리가..... 조금 지나칠 정도로 높은 자리였던 것이다.
마법사들이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있는 왕국 내에서, 마법사가 아닌 자가 올라갈 수 있는 자리로서는 사실상 가장 높은 자리였다.
저런 갓 스무 살 먹은 애송이에게 근위대장이라니.....


"말씀을 들은 것만으로도 평생 자랑으로 삼을 만큼, 과분한 제안이시옵니다."


"말은 참 매끈하게 잘 하는 친구로군!"

카를로스 백작의 대답에, 같은 생각들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갈색 로브 차림의 마법사들이, 이어지는 말에 멈칫하며 놀란 표정들을 지었다.


"하오나..... 신의 가문은 벌써 300년이 넘게 일레기아 왕실을 대대로 섬겨 왔사옵니다.
끝까지 주인된 가문에 충성을 다하고자 하오니, 허락해 주옵소서!"


퀸타비오 국왕의 가까이 앉아 있던, 40살 정도 먹어 보이는, 모인 중에서는 비교적 젊은 편인 마법사가 얼굴에 인상을 썼다.
검은 머리에, 매부리코, 날카로운 갈색 눈매가 몹시 사나와 보이는 마법사였다.

"자네 바보 아닌가?
콩알 반쪽만한 자네 영지에서 세금이나 제대로 걷히나?
잘해야 밀, 보리, 나뭇단, 털가죽..... 갖가지 잡동사니들이나 주섬주섬 걷히겠지.

근위대장은..... 그런 따위 물건들을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매년 현금으로만 20만 세테르는 받을 수 있는 자리일세.
게다가, 폐하께서 자네가 매기아(마법)에 재능이 있다고 인정해 주셨으니, 매기아를 배워서 정식으로 매기아러(마법사)가 될 수도 있을 거고....."

호전적인 인상만큼이나 매우 직설적으로 말을 하는 스타일인 듯 했다.


그러나, 젊은 카를로스 백작은 매끈한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비록 어리석고 아둔하지만,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다만, 제 주인이 저를 버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도 주인을 결코 저버릴 수 없음이옵니다."

감정이 비교적 쉽게 드러나는 편인, 리안 왕자가 옆에서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허허허허허!"

노국왕 퀸타비오가 또다시 사람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별볼일없는 주인일수록 오히려 충성을 바친다는 자세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법이지.
그렇지 않나, 타퀸 후작?"


조금전에 말을 꺼냈던, 사나운 인상의 마법사는 마지못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한심하고 답답하다는 표정을 전혀 감추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노국왕 퀸타비오는, 주인을 버리지 않겠다는 카를로스 백작의 대답이 오히려 꽤 마음에 들었던 듯, 흐뭇한 얼굴로 뜻밖의 소리를 했다.

"그렇다면, 대신..... 선물을 하나 주겠노라.

씨타씨온!" (소환)

오른손에 들고 있던 수정구슬 지팡이로 카를로스 백작의 옆을 가리키자, 황금빛의 기둥이 밑에서부터 솟아올랐다.
이어 빛의 기둥이 사라진 빈 자리에는..... 새까만 색의 전신 철판 갑옷과 투구 한벌이 놓여 있었다.

"오늘 훌륭한 무술 실력을 보여주어, 이몸을 기쁘게 한 그대에게 이 갑옷을 하사하노라!

아무런 장식도, 무늬도 없는 까만 갑옷이라고 해서 싸구려를 준다고 생각하지 말지어다.

입는 사람의 체구에 맞춰서 크기가 변하는 매기아(마법)가 걸려 있는 데다가.....
무게가 가벼우면서도, 주인에게 적대적인 모든 종류의 것들을 차단하는 능력이 있노라.
물론, 갑옷이 견딜 수 있는 범위 내에서지만.....

갑옷 모양의 바레라(방어막)라고 보면 될 것이로다.

심지어, 그대가 혹시 밤비르(흡혈귀)라도 된다면, 햇빛으로부터도 그대를 막아줄 것이로다. 허허허허허허허!"

마지막에 덧붙인, 퀸타비오 국왕의 실없는 농담에, 주변의 마법사들이 또다시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과분한 보물을 하사하시니, 성은이 하늘과 같사옵니다.
몇 년후가 됐든, 몇 십년후가 됐든..... 신의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항상 곁에 두고, 크신 은혜를 기리겠나이다."

뜻밖의 호의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 카를로스 백작은 공손하게 대답하며, 선 채로 깊숙히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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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아러(마법사)란 놈들은..... 정말 재수없기 짝이 없는 것들이라니까.
재미삼아 사람 목숨을 걸고 싸움을 벌이게 하질 않나.....
사람을 앞에 세워놓은 채로, 콩알만한 왕국이라느니, 뭐니, 말을 함부로 해대질 않나....."

아직까지도 분이 안 풀린 표정으로, 젊은 리안 왕자가 투덜거리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마법을 사용해서 각자 자기들의 나라로 사라졌고, 리안 왕자와 카를로스 백작은 병사들을 지휘해 전쟁터에서 전사자들의 시체를 거두고 있는 참이었다.

"저 재수없는 매기아러(마법사) 놈들이 없어진다면..... 훨씬 살기좋은 세상이 될텐데 말이야.
그렇지 않나, 카를로스?"


젊은 카를로스 백작은 말없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20살의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에 비해, 리안 데 일레기아 왕자쪽이 3살 위인 23살이었으나, 침착한 카를로스 백작쪽이 오히려 형처럼 보이는 분위기였다.
피제프 백작가의 영지가 일레기아 왕실의 왕성 가까이 붙어있는 탓에..... 어려서부터 자주 만나서 어울렸던 두 사람은 형제처럼 보일 정도로..... 스스럼없고 가까운 사이였다.


하지만, 마법사들이 모두 없어지면, 훨씬 살기좋은 세상이 될지는.....
카를로스 백작으로서는, 사실 그 점은 매우 의심스럽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자기들밖에 모르는 매우 이기적이고, 잔인한 자들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일종의 "재산 관리" 차원에서, 일반 백성들의 보호에는 꽤 철저한 자들이기도 했던 것이다.

세금은..... 농작물 등의 경우에는, 전체 생산물의 100중의 40.....
장사처럼 밑천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밑천을 제외한 이익에서 100중의 40.....
하지만, 땅이 척박해서 그렇게 세금을 내서는 생활이 어렵거나, 흉년이 들거나 하는 경우 등에는 줄여주는 식으로.....
꽤 융통성있고 세심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게다가, 심지어는 속국인 일레기아 왕국에 대해서까지도.....
마을마다 상비군을 두도록 강제하고, 씨타씨온(소환) 마법이 담긴 종이들을 나눠줘서, 주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괴물들이나 다른 종족들이 습격해 오는 경우에는 마법사들이 나타나 싸워주기까지 했다.


물론, 자기 나라 안에서 걷을 세금 비율까지 대신 정해주는, 마법사들의 간섭과 사람을 대놓고 무시하는 태도에.....
대부분의 왕족들과 귀족들은 울분을 터뜨리며 이를 갈고 있었지만.....


"시체 수습이 끝난 것 같군.
몬스아 왕국 놈들이 일찌감치 겁을 먹고 도망치는 바람에..... 500여 명중 사망자가 80명 정도로 양호한 수준에서 끝나서 그나마 다행이야.
내년에는 세금도 절반으로 감면 받았고.....

다 자네 덕분일세, 내 좋은 친구, 카를로스!"

스스럼없는 태도로, 리안 왕자가 카를로스 백작의 넓은 어깨에 팔을 둘렀다.
3헥사 7토르(약 185센치) 정도의 리안 왕자도 키가 꽤 큰 편이었지만, 4헥사(약 2미터) 가까운 키를 가진 카를로스 백작이 키와 덩치는 훨씬 컸다.
(1헥사 = 약 50센치, 1토르 = 약 5센치)


"과분하신 말씀이옵니다, 왕자 저하!
참, 아까 퀸타비오 국왕이 하사한 갑옷은 제게는 과분하오니, 왕자님께 바치겠나이다."


"하하하하하하!"

빨간 머리의 리안 왕자가 잘생긴 얼굴을 뒤로 젖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됐네, 이 친구야!
그 시건방진 매기아러(마법사) 놈들이 알면, 자기들의 왕이 내린 걸 뺐었다고 난리칠텐데.....

그럼, 조심해서..... 잘 가게나, 카를로스 백작!"


"예, 왕자 저하!
조심해서 돌아가십시오!"

왕실의 기병들을 이끌고 떠나가는 리안 데 일레기아 왕자에게,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이 공손히 고개를 숙여서 인사했다.
물론, 마법사들의 표현을 빌면 "콩알만한" 일레기아 왕국에도 귀족 가문은 최소한 수십 가문 이상이었으나, 이번 싸움에는 오직 피제프 백작가의 기병들 50여 명만이 동원되었다.
500명 전후의 기병들로 인원이 제한되는 이런 싸움에서..... 왕실 기병들을 제외하고는 피제프 백작가의 기병들이 가장 정예 병사들이었던 탓이다.

"출발!"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52명이었던 그의 병사들은 8명이 전사해 지금은 44명으로 인원이 줄어 있었다.
물론 전원이 크고 작은 부상들과 상처 투성이였지만..... 격렬했던 싸움을 생각하면, 거의 기적적일 정도로, 그나마 적은 피해였다.

식량 등 보급품을 싣고 있는 8대의 마차들이 기병들의 뒤를 따라, 피제프 백작령으로 함께 돌아가고 있었다.

"여흥거리"용 전쟁터로 지정된 이곳에서 피제프 백작령은 마차로 약 이틀거리였다.


........................................................................................................................


"정지!"

오른손을 들며, 애마 피오 위의 카를로스 백작이 신호하자, 모두들 일사분란하게 멈춰섰다.

"여기서 쉬면서 식사들을 하고 간다!"

"예, 백작님!"

"푸르르르르....."

어링광부리듯 콧소리를 내는 피오도 풀을 뜯어먹으며 편히 쉴 수 있도록, 재갈과 고삐를 잠시 풀어 주었다.

마부들이 마차에서 자루를 내려, 모든 병사들에게 퍼석퍼석한 마른 빵 두 덩이씩과 물 한 컵씩을 나누어 주었다.
백작에게도 호위병사들이 빵 두 개와 물 컵을 가져다 바쳤다.


"휴우....."

빵들을 받아든 카를로스 백작이, 그제야 한시름 놓은 듯한 기분으로, 어느 큰 나무에 기대서 풀밭위에 편히 주저 앉았다.

위엄을 보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자기가 먹을 음식은 따로 준비시키는 장군이나 귀족들도 있었지만.....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은, 야전에서는 항상 병사들과 똑같은 음식을,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함께 먹었다.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서도, 함께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응?"

백작의 갈색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커졌다.

열 살 가량 되어보이는 아주 지저분한 꼬마 하나가 손가락을 빨면서 바로 옆에서 빤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 위에서부터 덮어쓰는 헐렁한 갈색의 누더기를 걸친, 금발머리의 꼬마는 동그란 회색 눈동자로 말똥말똥 카를로스 백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항상 호위병으로 가까이 붙어 있는 4명의 병사들이 지금도 바로 옆에 서서 빵들을 먹고 있었지만, 너무 꼬마라서 그런지 제지하지 않고 있었다.

"배가 고픈가 보구나, 이 꼬맹이!"

"이 빵 같이 먹을까?"

백작이 손에 들고 있던 빵을 내밀자 마자, 꼬마가 백작의 빵을 덥썩 빼앗아 들더니, 걸신들린 듯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 빵은 더 있으니까.
자! 여기 물도 마시면서 먹어라!"


"털썩!"

물컵을 받아든 꼬마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백작의 무릎위에 올라 앉았다.
그 상태로 염치좋게, 물을 마셔가면서 빵을 먹기 시작했다.


"빵과 물을 더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백작님!"

유스탄이라는 호위병이 이빨이 드러나게 소리없이 웃으며, 빵을 더 가지러 마차로 향했다.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은 용맹스럽고 강한 전사인 동시에, 어려서부터 꽤 자상하고 이해심이 많은 편이어서..... 그의 부하들 모두 그런 백작을 꽤나 좋아하고 있었다.

꼬마는 여전히 백작의 무릎위에 앉은 채로, 백작의 빵 두 개를 전부 빼앗아 먹고, 지금은 배불러서 기분좋은 얼굴로, 물을 다 마셔 버리고 있는 참이었다.


"음..... 이 꼬마, 냄새가 좀 심하게 나는게..... 너무 지저분하군!
내 몸에서도 피냄새가 진동을 할테니..... 피장파장인 셈인가?"

"자! 꼬마야! 다 먹었으면 그만 집에 가보렴!
아저씨는 먹고, 또 떠나야 한단다!"


"집이 없어요!"


"푸훗!"

새로 가져온 빵들을 백작에게 바치고, 다시 백작 옆에 서던 호위병 유스탄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다급하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부모님이 안 계시니?"

백작의 물음에, 여전히 백작의 무릎위에 앉은 채인 꼬마가, 몸을 돌려, 회색 눈동자로 말똥말똥 백작을 올려다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어 달전에 전부 하늘나라로 갔어요.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맞아서 둘다 몹시 아팠어요."

눈물도 흘리지 않는 채로, 지저분한 얼굴의 꼬마가 대답했다.
아마 너무 어려서, 아직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탓이리라.


"그럼..... 두달 동안 뭘 먹고 살았니?"


"산딸기도 따먹고, 쓰레기통도 뒤지고, 개밥그릇에 남은 것도 주워먹고 그랬어요."


개밥그릇 얘기에 가슴이 아파진 카를로스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들의 표현을 빌리면 "콩알 반쪽" 만한 그의 영지였지만, 유서깊은 그의 가문은 대대로 내려오는 꽤 큰 성을 갖고 있었고, 하인들과 병사들을 포함해서, 수백여 명이 성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아저씨랑 가서 같이 살까?
이름이 뭐니, 꼬마야?"


"캐롤린이요. 캐롤린 프리몰라에요.
아저씨가 빵을 줬으니, 이 다음에 아저씨의 신부가 돼드릴게요!"


"그래? 고... 고맙구나!"

지저분한 금발머리 꼬마는 여자아이였던 듯 했다.
꼬마의 깜찍하고 엉뚱한 대답에, 쓴 웃음을 짓는 백작의 주위에 서 있던, 유스탄을 포함한 네 명의 호위병들은 억지로 웃음을 참는 얼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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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엄청나게 크다! 이게 아저씨 집이에요?"


"응! "캐츄 데 샹"(피의 성)이라고 부르지!"

피제프 백작가의 성은 특별히 외성, 내성이 구별되는 구조는 아니었으나.....
약 40헥사(약 20미터) 높이에, 가로, 세로가 각각 2,000헥사(약 1키로) 정도 되는, 제법 큰 정사각형 모양의 건물이었다.
병사들의 집결과 훈련 및 시장 등의 용도로 쓰기 위해, 가운데가 텅 비어 있는..... 네모난 도넛츠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검정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 - 잿빛의 돌로 된 성에 어째서 "캐츄 데 샹"(피의 성)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는..... 성의 주인인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으로서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가문의 보검인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와 마찬가지로..... 전쟁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는 삭막하고 위협적인 느낌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그런 의도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었다.


"도련님! 이기고 오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더운 물을 준비시킬테니, 목욕부터 하시죠!"

나이든 집사 온슬로가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의 부친이 갑작스런 심장 발작으로 숨을 거두어, 카를로스가 백작의 작위를 이은지도 벌써 2년째였지만.....
노집사 온슬로는, 입버릇처럼, 아직도 카를로스를 "백작님" 대신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백작의 모친도 백작이 아직 어렸을 적에 역시 심장 발작을 일으켜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피제프 백작가의 사람들은..... 대체로 4헥사(약 2미터) 가까운 큰 키에, 좋은 체격, 뛰어난 운동신경 등을 갖고 태어나서, 장사 집안이라고 불릴만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종종 심장 발작을 일으켜서, 비교적 젊은 나이의, 건강한 상태에서 갑자기 숨을 거두곤 했다.
먼 친척뻘인 백작의 모친까지도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은..... 사실 약간 의외였지만.....


"고맙습니다, 온슬로 아저씨!
아저씨가 성을 지켜줘서 항상 든든하군요!

참! 이 애는 캐롤린 프리몰라에요!
이제부터 우리하고 같이 지내기로 했어요."


"껄껄껄껄!"

노집사 온슬로가 소리내어 웃었다.

"어려서부터 버려진 강아지며, 고양이들을 그렇게 자주 주워와서, 늙은이를 괴롭히시더니.....
나이가 드신 지금은 스케일이 더 커지셨군요.

드디어, 사람을 주워오기 시작하신 겝니까?"


2층의 자기 방에 올라가서, 하인들의 도움을 받아 무거운 철판 갑옷들을 벗은 카를로스 백작이 겨우 한숨을 돌렸을 때였다.

"응?"

캐롤린이라는 지저분한 금발머리 꼬마를 뒤늦게 발견한 카를로스 백작이 저도 모르게 놀란 소리를 냈다.
방한쪽 구석에서, 회색 눈동자를 빛내며 말똥말똥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꼬마야! 너 아까 그 집사 할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았었구나!
아저씨는 목욕을 해야 하니까, 나가서 누구라도 붙잡고 집사 할아버지께 데려다 달라고 하렴!
좋은 할아버지니까, 잘 돌봐줄 거다."


하지만, 꼬마는 방을 나가는 대신, 백작을 말똥말똥 쳐다보며 물었다.

"나도 아저씨랑 같이 목욕하면 안 돼요?
마미(엄마)랑 파피(아빠)는 항상 같이 목욕했었는데.....
나도 이 다음에 아저씨한테 시집갈 거니까....."


"참, 맹랑한 꼬마로구나!"

어이없다고 생각하며, 꼬마를 내보내려던 카를로스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고아 꼬마를 위해서, 일부러 목욕물을 데워 주는 사람은 없을게 아닌가.
아직 어린애니 같이 하지 뭐!"

"그럴까?"


활짝 웃으며 반갑게 고개를 끄덕이는 꼬마의 누더기같은 갈색 옷을 벗기자, 갈색과 검정색으로 얼룩진 조그만 알몸이 드러났다.
부모를 잃은 후 두어달 동안, 밖에서 지내며 제대로 씻지 못한 듯, 아기 돼지처럼 지저분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긴, 갑옷 안까지 스며든 붉은 피로 온통 얼룩진 백작 자신의 벌거벗은 몸도 만만치 않게 지저분했지만.....

"와아! 욕실이 참 좋아요!"

흐뭇하게 웃는 알몸의 꼬마를 안고, 함께 더운 물이 담긴 욕조에 들어가서, 꼬마의 몸에서 껍질처럼 일어나는 지저분한 먼지와 얼룩들을 벗겨냈다.

"푸우! 푸우! 어푸우!"

목욕용의 작은 나무통으로 머리에 더운 물을 부어주자 푸푸거리면서도, 꼬마는 꽤 기분이 좋은 듯 생글거리며 웃었다.

갈색에 가깝게 보였던 머리카락은 이제는 젖어서 어깨에 착 달라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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