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게이트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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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위와 성명, 가문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로투소 가문의 이남 카일이오. 자작이오.”

“로투소 가문이라……. 아버님이 혹시 사자검 로투소 백작이십니까?”

“그렇소.”

“안 되겠습니다. 가문의 후계자가 없을 땐 도전을 불허한다는 칙령을 읽지 못하셨습니까?”

“사나이의 명예가 걸린 일이오. 내 절대로 무리하지 않겠으니 사정을 좀 보아주시오.”

“벌써부터 그렇게 땀을 흘리셔서야 일관도 통과를 하지 못하실 겁니다. 여기가 데스게이트의 일관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진 곳인지 아십니까? 직선거리로 1킬로미터가 넘습니다. 일관인 열화관의 지표면 온도는 250도가 넘습니다. 공자님께서 신고 있는 기름먹인 가죽기사화는 단박에 불이 붙습니다. 풀플레이트 갑옷은 열로 달아오릅니다. 일단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공자님의 형님이신 라일 자작님도 자신하셨지만, 결국 나오지 못하셨습니다. 돌아가십시오.”

“에잇. 네 놈들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내 목숨을 가지고 내가 도전하겠다는데. 이대로 돌아간다면 릴리아 공녀에게 내 무슨 말을 하란 말이냐? 겁쟁이란 소리를 듣지 않겠느냐. 차라리 도전하고 죽겠다.”



그 순간, 안쪽 초소에서 한 사내가 뭔가를 손에 들고 나타났다. 건장한 키에 준수한 얼굴이었지만, 피부가 묘하게 너무 붉었다.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붉은 얼굴을 가진 사내가 접수대를 차지하고 있던 쥐상의 접수관에게 비키라는 눈짓을 했다. 그리고는 만면에 억지웃음을 보이면서 사람 좋은 너털웃음으로 젊은 기사 카일 로투소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젠장 맞을. 빌어먹게 덥질 않습니까. 앉으시죠. 좀 더 현실적 차원의 대화를 나눠 보죠.”



심상치 않은 등장에, 귀족을 앞에 두고도 당당한 사내의 기세에 눌린 카일 로투소는 수도 최고의 병기점에서 5천 골드를 주고 맞춘 냉방마법이 장치된 풀플레이트 갑옷을 자랑스럽게 두드리며 사내의 앞쪽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말씀하신 릴리아 공녀라는 분이, 수도 제일의 실력자라는 체이슨 공작님의 첫 번째 따님이 맞습니까?”

“그렇소만. 그런데 자네도 이곳 초소에서 근무하는 병산가?”

“예. 그렇습니다. 마지막 초소의 초소장을 맡고 있는 칼이라고 합니다. 뭐 비천한 신분이니 그리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아. 그런가. 그럼 편하게 말하겠네. 지금 당장 열화관 입구로 안내하게. 내 열화관을 거쳐 고압관까지 단숨에 돌파하고 돌아오겠네.”



초소장 칼이 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한 권의 책과 한 장의 서류를 꺼내놓았다. 두툼한 책의 제목은 “이곳이 열화관이다”였고, 서류는 열화관 통과 증명서라는 들어본 적이 없는 증명서였다.



“굳이 들어가야 들어갔다 왔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질 않습니까. 여기 이 책을 읽으십시오. 그야말로 열화관에 대한 모든 것이 적혀 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열화관에 대한 그림 자료도 상세히 실었기 때문에, 실제로 열화관에 들어갔다 오신 분들보다 더 자세히 열화관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저희 초소에서 자체적으로 발급하는 증명서입니다. 여기 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여기엔 제 사인이 들어갑니다. 데스게이트 열화관 출입초소장 칼이 보증한다는 것보다 더 확실한 증명이 어디 있습니까?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열화관에서 일박 이일을 지내고 왔다고 해도 누구라도 믿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카일 로투소는 그제야 굳었던 얼굴을 풀었다. 그도 사람이다. 치사율 99. 7%의 데스게이트에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애초부터 실제로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카일 로투소가 이 궁벽한 베이탄 산에 오른 것은 다 릴리아 공녀에 대한 연모의 정과 사내로서 라이벌에게 질 수 없다는 오기 때문이었지 죽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이렇게 훌륭한 해결책이 있다니. 그것도 모르고 바보 같은 로엘 녀석. 그런데, 그러고 보니 로엘 녀석 어떻게 살아 돌아왔지. 영구 냉방 마법이 걸려있는 메일을 입고서도 이렇게 죽을 것 같은데. 혹시…….



“저기, 칼 초소장. 혹시 로엘 번천이라는 뚱뚱한 돼지 녀석도 자네를 만나고 돌아갔나? 음…… 한 달 쯤 전일 걸세.”

“아. 그 번천 가문의 도련님도 절 만나고 돌아가셨죠. 꽤나 겁이 많으셨습니다. 번천 가문의 도련님은 종자를 자기의 갑옷을 입힌 채 들여보내겠다는 협상을 저랑 하셨죠. 눈만 감아주고, 나중에 갑옷만 회수해 주면 300골드를 내겠다고 하도 때를 쓰셔서, 저도 좀 곤란했습죠.”

“역시. 그 돼지 녀석이 열화관을 통과했다니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지. 자네 그 이야기를 문서로 적어 줄 수 있는가? 그래도 세상에 진실은 알려야 하지 않겠나?”

“그건 곤란합니다. 저희 쪽에서도 신의가 있는데, 사실 이런 말씀을 올리는 것도, 자작님의 아버님이신 사자검 로투소 백작님과 형님이신 라일 자작님을 제가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침통한 표정을 지은 카일이 고개를 흔들더니 곧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 자부심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였다.



“형님은 어떠셨는가? 가문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죽음이셨나?”

“그렇습니다. 나중 시신을 모시러 열화관에 들어갔을 때 보고 정말 감동했었습니다. 열화관의 가장 깊은 곳에서 그것도 앞을 보고 그대로 쓰러져 계셨습니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뒤로 도망칠 생각이 없으셨습니다. 장엄한 광경이었습죠.”



카일 로투소는 태양과 전쟁의 신 라에게 먼저 간 형 라일의 무위에 대한 경의를 바치고, 다시금 능글거리는 사내 칼을 마주 대했다.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이 사내 칼은 일류의 솜씨를 가진 소드 익스퍼터 상급이었던 형 라일이 죽은 곳까지 가고서도 살아날 수 있었을까?



“그럼, 자네가 형님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말인데. 자네는 어떻게 열화관을 드나드는 건가? 비밀 통로 같은 거라도 있는가?”

“데스게이트 근처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으니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나은 면도 있지만, 결국 이런 꼴이 되었습죠.”



칼이 들어 보여준 발바닥은 참혹했다. 신경이 모두 죽어 있는 듯 시커먼 것은 둘째였고, 발가락이 모두 녹아 붙어 있어서 그 발을 보는 것만으로도 욕지기와 함께 구토가 일었다.



“죄인으로 태어나서, 봉록이 많지 않다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습죠. 지금도 열흘에 한 명은 귀족 자제분들의 시신을 모셔오기 위해 저희 아이들이 열화관에 들어갔다가 죽습니다. 당번제기 때문에 일단 들어가면 꺼내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열화관의 한쪽에는 시신수거조의 뼈다귀들이 잔뜩 쌓여있죠. 인세의 지옥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칼 초소장, 자네에게 한 명의 무인으로서 경의를 표하는 바네. 내 형님이라 하는 소리가 아니라 기개가 있는 무인이셨던 형님의 마지막을 자네가 돌봐준 것도 감사하네. 그런데 말이야. 부탁이 하나 있네. 데스게이트 안에서 기념이 될 만한 어떤 것을 가져다 줄 수 있겠나? 내가 거기서 나왔다는 증거가 필요하지 않겠나.”



초소장 칼이 매우 곤란한 표정으로 기사 카일 로투소의 말을 받았다.



“자작님.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좀 곤란합니다. 좀 있으면 폭염기가 다가오니까요. 폭염기 때는 설사 상급의 소드 마스터라도 열화관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아래 휴레인 마을에서 한 열흘 정도 기다려 주실 수 있다면, 제가 이 못난이 발이 모두 타 익는 한이 있어도, 꼭 릴리아 공녀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실 물건을 구해오겠습니다.”

“그래. 고맙네. 그런데 말일세. 이렇게 소중한 책과 증명을 내가 공짜로 가져간다는 것은 형님과 아버님의 명예에도 누가 되는 일이 아닌가? 내가 얼마나 내면 되겠는가?”



제법 능숙한 척 했지만, 카일 로투소는 아직은 어리고 순진한 기사였다. 로투소 가문의 사람에겐 그냥 호의를 베풀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 순진한 눈빛에 초소장 칼의 눈이 빛났다. 하긴, 뭐 빚은 서로 지는 것이 좋지. 주는 것을 못받는 것도 병신 짓이니까.



“아니. 어찌 제가 사자검의 아드님과 그런 부정한 거래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부탁이 있다면 데스게이트에서 죽은 동료들의 가족들에게 로투소 백작가의 은덕을 좀 내려주십사 하는 것 뿐입지요. 큰 돈입니다만 한 500골드 정도면 어떠실지요.”



끝까지 자신의 가문을 세워주는 초소장의 태도에 적이 만족한 카일 로투소가 전낭을 꺼내어 보석 하나를 내었다.



“그래. 그렇게 하지. 여기 이 루비를 내 놓지. 최상급의 물건이네. 수도에서도 잘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야. 그거면 500골드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네.”

“역시 사자검의 가문입니다. 자작님의 명예와 무위가 당대의 사자검을 넘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아니. 이 사람. 이 미천한 자가 감히 어떻게 아버님의……. 하하. 그럼 소식을 기다리겠네.”



기분좋게 떠나려는 카일의 뒷꼭지를 비웃음으로 바라보던 초소장 칼이 내려가는 카일을 급히 불러세웠다.

“잠깐만요. 공자님. 그 갑옷과 신발을 벗으시고, 저희 초소원이 제공하는 갑옷과 신발을 가져가시지요.”

“무슨 이유라도 있나?”

“일단 열화관 안에 던져 넣었다가 나중 폭염기가 끝이 나면 꺼내 오려고요. 증거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오. 역시. 좋아. 그렇게 하지.”



카일 로투소가 희희낙락한 미소를 지으며 베이탄 산 아래 휴레인 마을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의문의 사내 칼은 초소 안으로 소리를 질렀다.



“도쿤, 도쿤. 어서 나와서 전리품을 챙겨라.”



도둑이었던 부초소장 도쿤은 금세 카일 로투소가 벗어놓고 간 풀플레이트 메일의 가치를 알아챘다.

“초소장님 대박이군요. 이 풀플레이트 메일은 수도의 베르토니 공방에서 수제로 만든 것입니다. 오오. 영구 냉방 마법진까지 속에 새겨진 것을 보니 적어도 5천 골드는 주고 제작했을 겁니다. 역시 베르토니 터치입니다. 이 미려하기 짝이 없는 라인을 좀 보십시오. 작품이 따로 없질 않습니까. 그나저나 로투소 가문은 돈이 많은 집안이군요. 그에 비해 기사화는 별로군요. 이건 그저 멋으로 만든 것이라 15골드도 안 할 겁니다.”

“폐품창에가서 이거랑 비슷한 풀플레이트 메일을 하나 찾아 놔. 불에 완전히 그을린 걸로. 기사화는 타 버렸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그건 됐고. 그리고 짐머에게 열화관에서 막 나온 것 같은 물건을 하나 만들라고 해. 여자에게 뻐기고 싶은 모양이니까. 좀 작고 예쁘장한 걸로.”

“예. 초소장님. 오늘 근무 마치고 휴레인 마을 가서 한 잔 할 건데, 같이 안 가실랍니까? 어차피 좀 있으면 폭염기가 닥칠테니 도전하려는 미친 귀족 자제 놈들도 없을 것 아닙니까?”

“도쿤, 네가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지?”

“8개월 쨉니다. 초소장님을 빼면 제가 제일 고참이질 않습니까? 저도 이제 귀족 놈들 생각이라면 뻔히 다 알고 있습니다.”



홍면의 얼굴이 굳어졌다. 초소장 칼이 심각한 얼굴로 도쿤을 노려보며 한자 한자 끊어 말했다.

“귀족들의 공명심과 책임감. 가문을 위한 의지를 무시하면 안 돼. 아까 희희낙락 내려간 그 애송이 녀석도 내가 적절히 타협시키지 않았다면 결국 칼을 뽑아 접수관인 널 해쳐서라도 열화관에 들어가 죽었을 거다. 폭염기건 뭐건 근무는 거를 순 없다. 누구도.”

“그럼 안 내려 가실 겁니까. 애들이 기다릴 텐데요.”

“돌아올 때 맥주나 한 통 사오던지. 그리고 통신마법으로 휴레인 마을 여관을 연결해서, 카일 로투소라고 내가 호구 하나 보냈으니까 최대한 비싼 걸 팔라고 해. 공자님 수준을 맞춘다 어쩐다 하면서. 알겠어!”

“예. 일단 그러면 통신마법부터 보내고 오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번 신병들은 좀 어리바리하던데 말입니다. 사람살 타는 냄새를 맡는 것도 지겨운데, 제국에서는 왜 이 망할 놈의 데스게이트를 폐쇄시키지 않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투덜거리던 도쿤이 풀플레이트 메일과 기사화를 들고 간 곳은 초소의 아래쪽 바닥을 발로 밀어서 나타난 계단을 한참이나 밟고 내려간 곳이었다. 중간 중간에 마나석에 라이트 마법을 인챈트한 마나등이 빛을 내고 있어서 전혀 어둡지 않았다. 폭염기가 다가오고 있는 초소의 지하는 끓어오르는 지열 때문에 몹시 덥고 끈적끈적했다.

나선형으로 된 계단을 따라간 지하 일층엔 짐머의 대장간이 있었다. 들어갔더니 큰 동판을 얇게 펴서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짐머의 망치소리로 머리가 멍할 지경이었다.



“짐머! 짐머!”

“아. 부초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초소장님 명령 하달하러 왔지. 한 열흘 정도 후까지 열화관 안에서 꺼내온 것 같은 작고 귀여운 뭔가를 만들라는 지시다.”



무뚝뚝한 얼굴의 대장장이 짐머가 들고 있던 망치로 내려치던 동판을 내버려둔 채로 도쿤이 가져온 메일을 세심히 살피며 퉁명스럽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얼치기가 또 하나 찾아왔군요?”

“그래. 뭐, 언제나 비슷한 일이지. 그런데 그건 뭐 만드는 것이냐?”

“신병 수련용 파이어 로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저번에 만든 것과 달리 이번엔 레일을 동판으로 만들려고요. 철은 그냥 뜨거운 것만 견디면 되지만 구리판은 녹으니까 끈적끈적 달라 붙을 겁니다. 뭐 견뎌내는 놈만 살아갈 수 있겠지만, 그것이 또 우리 인생이니까요.”

“다들 또 죽는다고 난리 치겠군. 참 오늘 신병들 들어와서, 휴레인 마을에 맥주한 잔 하러 가기로 했다. 저녁 먹고 껴라.”

“어. 저 오늘 밤엔 근무입니다. 에이. 제기랄. 뭐 하나 되는 게 없다니까. 그건 뭡니까? 좋아 보이는데요.”

“아. 얼치기 귀족 도련님이 가져온 풀플레이트 메일이야. 비싼 물건이지. 창고 가져다 놓으려고.”

“베르토니 터치인데요. 그거 거기다 두고 가십시오. 제가 좀 보고 나서 창고에 입고시키겠습니다.”

“아서라 아서. 또 그 무식한 망치로 다 구겨 놓으려고. 이거 오천골드는 나가는 물건이다. 보려면 초소장님 허락을 받고 보던지. 그럼 수고해라.”

“예. 욕보십시오.”



순간적으로 도쿤은 무거운 풀플레이트 메일을 들고 지하 5층의 창고까지 가는 게 귀찮아졌지만, 망치와 모루, 정과 집게의 세계에 빠져있는 저 호기심 덩어리 대장장이에게 메일을 맡겼다간 몽땅 해체부터 해버릴 것이 뻔했기 때문에, 초소장인 칼이 찾기 전에 얼른 발을 움직이는 것이 여러모로 제일 나은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지하 2층의 주방을 지나 3층의 예배당을 지나는데, 돼지선발을 위해서인지 콘라드가 새로 들온 수거조원들의 치수를 재서 적어두고 있었다. 돼지는 귀족 자제들이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곳까지 도달했을 경우에 비슷한 체격의 죄수를 던져 넣어서 대용으로 쓰는 경우를 말한다. 열화관에서 죽은 시체들은 피부가 온통 타버려서 완전히 쪼그라들기 때문에, 비슷한 체격이라면 들킬 염려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시체 수거조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근무하는 내내 체격이 비슷한 멍청하고 강한 귀족자제들이 오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지하 4층의 주둔지에 이르러서야 조금 공기가 시원해졌다. 3서클의 마법사 네온이 마구 설치한 영구냉방마법진 때문이었다. 초소장이자 데스게이트의 거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칼은 자연이란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며, 데스게이트란 극염의 대지가 생긴 것도 사실은 무분별한 개발정책 때문이라 말하며 마법진의 설치를 완강히 반대했었다. 주둔지에 영구냉방마법진을 설치한 것은 폭염기에 이르러 참고 뭐 그것도 수거조의 대부분이 더위와 열병에 지쳐 쓰러지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지하 5층은 대원들이 팔 수 있는 마지막 깊이였다. 실제로 5층 창고의 한쪽 구석엔 열을 내뿜고 있는 용암 구멍이 존재한다. 이런 곳에 창고를 마련한 이유는 극히 높은 온도로 인해 건조해진 공기 때문에 창고에 보관하는 물품들의 보관상태가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양호했기 때문이다.



"젠장할. 덥구만."

벌겋게 끓어 오르는 용암을 바라보며 퉁명스레 불평 한 마디를 던진 도쿤이 성능이 뛰어난 패너플리와 풀플레이트 메일들이 가득한 한 켠에 카일 로투소의 갑옷을 세워두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올라왔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이 곳 창고로 보내는 칼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 곳은 올 때마다 너무 가슴이 두근거린다. 전직 도둑으로 유독 물욕이 강한 그에게 금은 보화며 좋은 무구들이 가득한 창고는 시험과 수양의 장소가 되고 마는 것이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돼지 처지에, 금속 종류는 가지고 있기만 해도 불타는 쇠를 손에 올려놓는 형벌이나 다름 아닌 초소였기에 망정이지. 아직까지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도쿤이 아쉬움이 가득한 눈으로 초소로 올라왔을 때, 칼은 작고 예리한 손칼로 발바닥을 베어내고 있었다. 스물스물 피가 배 나오는 칼의 온통 죽어버린 발을 보면서 도쿤은 눈을 찌푸렸다.



"초소장님, 그건 왜 그렇게 매일 벗겨내십니까? 그대로 두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고통을 받을 때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갑옷은 잘 가져다 뒀나? 뭐 훔쳐가고 싶은 물건은 없고."

"늘 가지고 싶은 것이 달라집니다. 오늘은 닐케의 반지가 눈에 보이더군요."

"좋은 일이야. 그렇게 가지고 싶은 가지기 위해서라도 오늘을 견뎌야겠지."

"초소장님. 그러지 마시고 초소장님도 방물장수 케이트를 통해 들어오는 방화 신발을 신으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편한 곳으로 도망치다보면 바로 눈앞에 죽음이 찾아오는 법이야. 인세의 지옥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가장 아픈 길을 택하며 살아가는 것 뿐이지. 그나저나 오늘 저녁엔 누구누구를 데려갈 참이야?"

"뭐, 특별한 일이 없는 녀석들은 모두 데려가야죠. 피트선생은 가지 않겠다고 할 테니, 콘라드와 네온경. 데일과 이번에 들어온 소라닌 녀석까지 다섯이 되겠군요."

"짐머는?"

"근무랍니다."

"그래, 내려갔다 오는 것은 좋지만, 술은 많이 먹으면 안 돼. 알지?"

"예."

"그럼 애들 단속 잘 하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폭염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멀리서 펑펑 하고 지하의 용암이 터지며 분출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성이 차지 않았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서긴 하다. 답답한 가슴을 어루만지며 붉은 얼굴의 칼이 발바닥을 헤집던 소검을 허리에 찼다. 한 발을 내딛자마자 찌르르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흐른다. 제길. 열기에 땀세포가 죽어버렸는지 흐르지 않던 땀이 흐르는 느낌이다.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에 가지고 다니던 화상방지용 연고를 들어 얼굴에 바른 칼은 무심하게 그저 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둔지로 향하는 동굴의 문이 열리며, 역시 얼굴이 붉기론 칼 못지않은 짐머가 하얀 김을 상반신 전부에서 내면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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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문용 판타지를 한 번 써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이지만, 소라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쓰지 않으려다가 여러분의 판단을 받고 그만둬도 두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이 글은 비야설입니다. 만약 원하지 않으면 그만 쓰세요를 댓글로 달아주세요. 5건이 넘으면 그만 두겠습니다. 말씀을 드리지만, 로또 2등에 당첨됐었다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연재를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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