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그녀의 변모 -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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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게 다는 아니었다.



미경은 화장실에 간다는 말에 태식이 표정이 묘하게 변한걸 눈치 챘다.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 저 놈은 아까 볼일 보는 나에게 플래시를 비춘 변태 같은 놈이었다.

그냥 바람 좀 쐬러 간다고 할 것을. 굳이 뭐하러 화장실 간다는 말을 해서 아까의 일을 떠올리게 한 것일까..

이미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미경은 천천히 화장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태식이라는 사내가 어쩐지 음흉한 말투로 쫓아 나온다.

"누나 같이 가요~"



태식은 화장실을 간다는 여자의 말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년은 내가 아까 볼 일을 보고 있는 자기한테

다짜고짜 플래시를 비춘 놈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모양인 게 틀림 없었다.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행운이 또 생길 리가 없겠지만. 뭔가 희미한 기대감으로 태식은 화장실 가는 여자에게

능글맞게도 같이 가자고 말을 건넸다. 물론 싫으면 말고.. 그냥 따라가면 되는 거지.

여자는 마지 못해 알았다고 대답한 뒤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브래지어 자국이 없는 날씬한 등이 눈에 들어온다. 얇은 나시 티셔츠는 뒤에서 봐도 역시 여자의 몸매를 제대로 드러내주고 있었다.

짧은 반바지의 뒷태가 너무 섹시한 느낌이어서 태식은 여자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그저 따라가면서 여자의

뒷태를 감상하는 것 만으로도 꽤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오줌 싸는 보지도 봤겠다, 노브라의 가슴도 봤겠다,

편하게 뒷모습까지 보다 보니 마치 저 여자가 내 여자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엉덩이를 씰룩 거리면서 걸어가던 여자가 잠깐 걸음을 멈췄다. 태식이 여자의 옆에까지 오자 그제서야 조용히

그러면서도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까는 왜 그랬던 거야?"

움찔..

태식은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알고 있었던 거야? 씨발년..알고 있었던 모양이네.."

순간 머리 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지. 태식은 적당한 대답을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

"응? 으응.."

시간을 끌고 대답을 못하면 진짜 파렴치한 놈이 되고 만다..

"아까.. 화장실 갔다가 나와서 그냥 담배 한대 피우려고 있었는데.. 누군가 갑자기 내 앞에서 볼일을 보더라고.."

말 해놓고도 좀 앞뒤가 안 맞는다. 차마 따라가서 엿봤다고는 못할 일이었다. 여자는 멈춰 서서 조용히 듣고만 있다.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나도 좀 황당해서.. 누군가 궁금도 하고. 확인도 하고 싶어지더라.. 그래서 그렇게 되었어..진짜 미안.."

씨팔. 미안하기는 머가 그리 미안하다는 건지. 급하니까 미안하다는 말이 두서 없이 튀어나왔다.

태식은 이런 식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다 보니 더더욱 내가 잘못했다고 못박는 것 같아서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미경은 몇 발자국 뒤에서 따라오는 태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자식은 지금도 내 짧은 반바지의 히프라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내 뒤를 따라오고 있을게 뻔했다.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살짝 히프에 힘이 들어가는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다.

아까 플래시를 비춘 행동이 다시 떠올랐다. 내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대놓고 나를 비춘 건 너무했던 거다.

미리 생각하지 않았던 말이 준비 없이 입에서 튀어 나왔다. 이미 발걸음은 멈춰서 있었다.

"아까는 왜 그랬던 거야?"

왜 그러긴. 뻔한 건데. 물어볼 필요도 없는 말인데. 일단 뱉어내고 나니 곧바로 쓸데없는 소릴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 녀석이 아까 그 파렴치한 놈인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이놈 입에서 "뭐가?" 라는 말이 나온다면 그 다음엔 뭐라고 둘러대야 하는 건지 머리가 복잡했다.

다행히도 녀석은 움찔하면서 순순히 미안하다고 털어놓았다.

일단 미안하다고 해버리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다. 어찌 보면 주변을 확실하게 확인하지도 않고 바지를 내려버린 내 잘못도 있는 거고. 화장실 뒤편이 여자 화장실도 아니니 심하게 따질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이자식이 여자화장실에 들어와 훔쳐본 것도 아니었으니..

미경은 더 이상 그 이야기를 하는 것도 민망하기도 하고. 사과 까지 받은 마당에 치졸하게 더 따지는 것도 우습다 싶어서 이만 하고 화장실로 가던 발걸음을 계속 하기로 했다. 이만하면 다 끝난 일이었다.

과장된 몸짓으로 미안하다는 태식을 슬쩍 쳐다보고 "그래 이만 용서해주께 짜식아." 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딛는 순간 태식의 입에서 예상치 않았던 말이 이어졌다.

"근데.. 누나 진짜 털 존나게 많더라.."

미경은 순간 숨이 막혔다.

"나쁜 놈아. 멀 그런 얘길 하고 그래!! 너 진짜 나빠!!" 흥분한 나머지 말을 놔버렸다.

이상하게 다리에 힘이 풀렸다. 생리현상이 급하지 않았다면 잠시 주저 앉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경은 가까스로 붉어진 얼굴을 돌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괜한 얘기를 꺼냈다는 후회가 다시 한번 미경에게 밀려 들었다.

미경은 묵묵히 따라오는 태식이로 부터 벗어나려는 듯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내는 멀어지지도 가까워 지지도 않고 조용히 따라왔다. 이상한 압박감 이었다. 그리고 미경은 스스로가 이 사내를 끌고 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이상한 기대감이 엄습했다.

아까부터 짧은 반바지는 미경의 보지를 계속 자극하고 있었기에 이 상황이 더욱 혼란스러웠다.

뒤에서 따라오는 사내를 의식한 히프의 흔들림은 좀 더 자극적인 향내를 풍기고 있었다.




태식이가 여자를 따라 화장실로 향한 뒤에도 창현과 민규는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민규는 벌개진 얼굴로 말까지 더듬어 가면서 창현에게 말했다.

"저년 진짜 죽이지 않냐?" "장난 아니지 진짜?"

"창현아. 나 저 년 보지털 봤다. 털이 장난이 아니더라."

"진짜? 에이 시팔놈아 진작 말을 하지.. 니 자리에선 보였냐? 난 가슴하고 튀어나온 꼭지 보느라고 그쪽은 아예 못 봤네..에이 아까워라.."

"야, 우리도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따라가보자."

"그러까? 어차피 화장실 가는 건데. 태식이 새끼 혼자 재미 보는 꼴은 못 보지..크크..그러자 가자."

둘은 의기 투합하여 화장실로 향했다. 멀리 여자의 모습과 그 뒤에 여자 뒷태를 감상하면서 따라가는 태식의 모습이 보인다. 어두운 캠핑장 이지만 그래도 화장실 가는 길은 군데군데 조명이 있어서 확인이 되었다.

한순간 여자가 걸음을 멈추고 태식이와 뭐라뭐라 얘기를 했다. 몇 마디 나누던 여자는 다시 화장실로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이지만, 민규는 여자의 뒷태가 좀 더 섹시한 걸음 걸이로 바뀐 것처럼 보였다. 민규와 창현은 걸음에 속도를 올렸다.

화장실에 도착하기 전에 저 둘을 따라잡을 심산이었다. 둘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발걸음의 속도는 미리 짠 것처럼 빨라졌다.

이런 면에서 둘은 참 잘 맞는 친구 사이였다.


여자 화장실에 도착한 미경은 마치 더 이상의 사건은 원치 않는다는 마음 가짐을 굳힌 듯, 뒤에 따라온 사내는 알 바 없다는 태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러나 문을 연 순간 퀘퀘한 냄새가 넘쳐 나왔다. 화장실 바닥에는 아까의 그 남자들이 사방팔방에 오바이트 한 내용물들을 흩뿌려 놓았다. 어지간한 미경으로서도 간단히 들어가기가 꺼려지는 심한 상황이었다.

아주 잠깐 동안. 미경은 스스로에게 닥친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건 마치 미리 짜놓은 각본 같았다.

오늘은 순간순간 여러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하루였다. 주어진 각본에 반항하지 않고 따르기로 결심한 건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어떤 희미한 기대감이 있었던 걸까? 뭔가에 대한 확실하지 않은 갈망이 기회를 잡은 듯 꿈틀거렸다.

조용히 화장실 문을 도로 닫았다.

미경은 자기가 끌고 온 남자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끌고 온 남자였다. 이럴 줄 알고..

"태식이라고 했지? 나 뭐 좀 부탁 좀 할게."

"네? 뭔데요?"

"여기 여자 화장실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아, 누가 오바이트 엄청 해놨어."

"네? 아~ 그래서요?"

"나 그냥 아까처럼 뒤에서 볼일 볼래. 태식이 니가 누구 안 오는지 좀 망을 봐주라~"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하는 미경이었지만. 스멀스멀 야릇한 현기증에 눈이 자꾸 감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네? 아~ 예~ 그러셔요 그럼."

"너 아까처럼 쳐다보구 그럼 안되는 거 알지?"

"어휴.. 알았어요."


미경은 스스로에 대해 놀라고 있었다. 미친년이라고 욕하면서도 왜 그런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진짜 미친년이었다.

도무지 뭘 바라고 이러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태식에게는 어디서 어떻게 기다리라는 말도 없이 미경은 화장실 뒤쪽 아까 그 자리로 왔다. 조명이 없는 뒤편은 아까에 비해 편안했다. 태식이가 지켜주고 있기에 안심이었다.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으니 이번에야 그러지 않겠지.. 단추를 풀고 바지를 내렸다.

이번엔 그러지 않을 꺼라 믿기로 했다.

글세..


아니. 절대 믿지 않기로 했다. 믿지 않고 싶었다.

그런 믿을만한 놈일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부탁했던 거다. 믿을 만한 놈이 아니라서..



때로는 스스로의 변화에 대해 대견함을 느낄 때가 있다. 알을 깨고 나온 건지 보호막을 깨버린 건지 구분이 안 가서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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